『맨 나중에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품삯(한 데나리온 씩)을 치러주시오』(마태 20, 8)
내가 만일 지금 죽는다면 하느님 앞에서 어떤 품삯을 받게 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나의 내면적인 개인 생활은 부실하니까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일생 동안 수도회에 소속하여 살았고 또 잘하든 못하든 성직에 봉직했으니 어느 정도 그 공로는 참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수도회에 입회한지 35년에다가 사제 생활 25년이 어디 여간한 것입니까? 아무리 엄하신 하느님이셔도 이 부분만은 그 공로를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지급하는 봉급액을 책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기준은 애매합니다. 물론 고용자(雇傭者)는 한 푼이라도 많이 받으려하고, 사용자는 회사의 이익을 한 푼이라도 더 남기자면 인건비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큰 회사에서는 해마다 임금 투쟁을 위한 노동쟁의도 발생하지만, 소규모의 작은 회사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래서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이 잘 마련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이상(理想)은 제시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회사를 위하여 일을 했으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만큼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최저 임금액을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고용자(雇傭者) 개인의 능력과 회사에 공헌한 실적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면 됩니다. 이때 그 능력이나 공헌도를 돈으로 책정한다는 것이 대단히 애매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입사한 순서대로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며, 근무한 햇수에 따라 호봉을 정하고 급여를 책정하게 됩니다. 이 방법은 다른 면으로 대단히 불합리한 방법입니다.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반드시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야구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연봉제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용자(雇傭者) 봉급은 개인의 능력과 사용자에게 끼친 공헌도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이 고용인(雇傭人)들에게 지급한 임금은 아주 합당한 결정입니다. 우선 한 「데나리온」라는 금액이 최저 임금인 듯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 「데나리온」씩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도밭 주인이 보통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면 아침부터 일했다고 해서 별로 하느님께 보탬이 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 것이 고용인(雇傭人)에게는 영광이요 은총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하신 분이라 말합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거기에 더 보탤 수도 뺄 수도 없음을 뜻합니다. 누구가 아무리 열심히 큰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는 보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찬미가 주께 필요하지 않은 줄 아오나, 주께서 은혜를 베푸셨기에 감사드리오니, 우리의 찬미가 주께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 구원에 유익이 되나이다』(평일미사 감사송4).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 것이 하느님께 무슨 큰 공헌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분께 새경을 쳐서 받으려 하는 것은 하느님과 흥정하자는 사람들로서 바로 「바리사이파」사람들의 소치였습니다.
35년 동안 수도원에 적을 두고 25년 동안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했다고 무슨 응분의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어떤 보상을 기대한다면 이것은 바로 「바리사이파」의 정신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물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특별히 더 많이 계산해 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하느님께서는 아쉬움 없이 일용할 양식을 주셨고 또 주님의 포도밭에서 봉직할 수 있게 해 주심이 나에게는 영광이며 은총일 따름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오로지 이 은총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뿐, 무슨 보상 타령이나 하면서 앉아 있지 말고 부실한 나의 내면적 삶이나 부지런히 추슬려야 하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