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레스섬 틸랑본당에 도착한 다음날인 8월18일(일요일). 막연한 호기심으로 찾은 오지 신앙촌에서의 아침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움직이는 원주민들의 부지런함과 함께 시작됐다.
열대 우림 오지에서의 신앙 공동체, 그 실체는 틸랑본당 신자들의 주일미사에 참여하면서 보다 확연해졌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자 성당 안은 어느새 모인 1천여 명의 신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워졌다.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선 그들이었지만 피곤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틸랑본당 원주민들이 봉헌하는 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악기도 없이 즉석에서 이뤄지는 4부 화음의 토속 성가는 천상에 온 듯 한 착각을 들게 했다. 음악성은 타고난 듯, 성가는 악보도 없이 자연스레 이뤄졌다. 미사시간 내내 숨을 죽이고 사제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경건함마저 느끼게 했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어 미사 중에는 아기 울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원주민들도 성당 안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도에 열중하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비록 붉은 벽돌의 웅장한 성당에서 봉헌되는 미사는 아니었지만 그 경건함에 시간은 정지된 듯 했다.
허름하게 보이는 틸랑성당은 지난 1994년 지진으로 모두 전파돼 지금은 대나무로 임시로 지어져 사용되고 있다. 비록 대나무로 지어졌지만 제대 뒤편은 이 지역에서 최고급 건축소재로 인정받고 있는 합판을 사용해 그들 나름대로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였다. 성당건물 보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실정에서 틸랑본당에 소속돼 있는 9개의 공소상태는 말할 나위 없이 열악했다.
본당은 그나마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어서 형편이 낫지만 아직 외지인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라노(Lano)지역 등 대부분의 공소는 복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친족 단위로 구성된 마을은 원주민들의 신앙을 결집하는 요소로 작용하는데 틸랑본당 지역은 이 마을 단위가 곧 공소화 되어 있었다.
틸랑에서의 공소는 단지 본당에서 떨어져 있고 사제가 상주하지 않을 뿐이지 하나의 독립된 본당이나 다름 없었다. 주일미사도 각 공소별로 돌아가며 봉헌되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각 공소가 활성화 되어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1백여 가구만 모이면 공소건물을 스스로 짓는 이들의 열심한 신앙은 놀라울 정도. 번듯한 학교 건물 하나 세우지 못하는 원주민들이 성당만큼은 최고급 소재로 짓는다는 이야기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소건물 건축 노력은 이내 벽에 부딪치기 일쑤다. 이는 바로 그들의 생활고에 기인한다. 가장 신자수가 많은 틸랑본당의 주일헌금이 5달러. 그나마 대부분 감자 등 농작물류의 현물이 대부분이다. 틸랑본당 신자들이 겪고 있는 생활고는 비단 주일헌금 액수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미사 후에 돌아본 마을 각 가정의 굴뚝에는 연기가 피워 오르지 않았고, 우연히 찾아 들어간 한 가정의 주방(돌 몇 개 위에 솥을 걸어놓은 것이 전부)에는 먹을 식량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그때 끼니를 야자수 등으로 때우는 신자들의 생활상은 비참하기까지 했다.
틸랑본당 알로이스 주임신부는 이들을 위해 작은 면적의 땅에서도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신 경영 농법을 주민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거의 무의미해 보였다. 10월까지의 건기에는 비가 오지 않아 농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로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식수마저 귀한 실정이었다.
본당 사제 및 수녀와 원주민들은 타삐까(Tapioca)라고 불리는 식용녹말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위생적인 문제서 오는 거부감과 양념 등이 입맛에 맞지 않아 취재일정 내내 이 음식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
이들 생활의 비문명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체국이 따로 없는 것은 물론이고(틸랑본당의 경우 알로이스 신부가 우체부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모든 주민이 땔감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병에라도 걸리면 약값 마련을 위해 땅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공산품 및 의약품의 가격이 고가여서 의료 혜택은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대나무로 엮어 바람만 막는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고, 전화 등의 통신시설은 전무했다. 전기도 밀림지역 안에 위치한 공소에는 전혀 보급되지 않은 상태고, 인구 밀집 지역에만 선별적으로 극소수 가정에 보급되고 있었다. 이나마 전기가 보급되는 것도 지난해에 와서야 이뤄진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틸랑본당은 이들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생활기반이었다. 우체국의 역할, 신용협동조합의 역할, 청소년 교육기관의 역할은 물론이고 정신개혁 및 농업교육 역할 등을 담당하고 있는 틸랑본당은 주민들의 모든 생활을 유지케하는 유일한 기관이나 다름 없었다.
틸랑본당 지역에는 본당에서 직접 운영하는 9개의 국민학교와 1개의 중학교가 있지만 많은 수의 원주민 자녀들이 지리적인 여건으로 아직 교육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각 마을이 정글 속에 위치한 탓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큼의 학교나마 세워진 것도 모두 주민 정신 개혁운동을 벌이고 있는 알로이스 본당신부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다.
알로이스 신부로 인해 주민들의 신앙심 및 자립심이 향상되자 이슬람 교도들은 틸랑지역에까지 찾아와 알로이스 신부를 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본당 청년들의 도움을 얻어가며 위기를 모면하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암살 위험 속에서도 알로이스 신부는 이슬람교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가톨릭 신앙인만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틸랑본당 신자들과 함께 한 하루는 이내 저물었다. 원주민 신자들의 경건한 미사참례 모습은 하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록 문명과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그 어떤 비문명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문명의 손길을 거부한 채 고고한 그들만의 신앙을 지켜오고 있는 틸랑본당 신자들. 비록 엄청난 생활고 속에서 고통받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도움주실분=국민은행 303-21-0977-275 곽호인 신부, 농협 209-02-308857 곽호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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