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방문지는 하북성 안국(安國). 그곳은 북경에서 고속으로 달려서 약 4시간거리. 안국시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면소재지 정도의 농촌이었다. 그곳에서 제일 좋다는 우리 호텔 옆에는 밭이 있었고 내부에 들어서니 고약한 한약재 냄새가 코를 찌르고 푹푹 찌는 더위, 푸짐하게 차려온 그 좋은 중국식「진수성찬」인데도 왠지 소복소복한 음식 접시들은 그대로 퇴장당하고 있었다. 70년전 레브 신부님이 이곳에서 활동하셨을 때를 생각하니 죄송할 따름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방문한 곳은 레브 신부님이 창설하셨던 데레사 수녀회(1930). 6명의 70-80대 수녀들과 40명의 20-30대 수녀들이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활동무대이자 수녀원이고 수련원이었다.
마침 1년 전 신학교에서 은퇴하신 신부님이 프랑스어를 잘 하셔서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분이 23년간 혹독한 감옥생활을 하셨었고 개방 후 하북성 석가장 신학교 교수이자 학장으로 활동하셨던 라자리스트회의 진환장(陳煥章)신부님(72세).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문화혁명 당시 교회가 당했던 박해상황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옆에 앉아 계시던 93세의 교구 신부님과 84세의 데레사회 수녀님이 생생하게 수난사를 증언해 주셨다. 애띤 수녀들의 해맑고 소박한 미소 머금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말없이도 우리는 같은 정신을 이어받은 레브 신부님의 한 가족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단순하면서도 철저한 영성의 전진상(全眞常) 정신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이어서 레브 신부님이 거처하셨고 인근에 요한 세자의 남자수도회를 창설하셨던 옛 주교좌 성당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였다. 2년 전 회수되었으나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수난의 모습 그대로였다. 온갖 수난을 당하시고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섬뜩함을 느끼는 동시 뜨거운 눈물이 울컥… 무성한 잡초 속에 머리 다리 다 잘린 채 몸채만 남아있는 대성당… 그런 시골에 그런 성당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던 옛 모습은 남은 벽면과 조각에서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또 신학교를 연상시키는 일자로 나열된 많은 창문들이 보이는 앙상한 주교관 건물… 대성당은 오랫동안 시장 상가로 사용됐었고 주교관 건물은 옆에 있는 중학교 교사들의 사택으로 사용돼 오다가 2년 전에 교회로 회수 되었다는데 교회부지 한편에는 새로 지은 듯이 반듯한 교사들의 사택건물과 부속건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제는 우리들이 함께 우정의 기도를 바치고 기념촬영을 마친 다음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며 떠나려는 순간에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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