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에 초청받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습니다』(마태22, 5)
요즘 결혼식은 옛날같지 않아서 잔치가 없습니다. 대개는 예식장이나 교회에서 치러버립니다. 그리고 결혼식장에는 접수하는 곳이 있어서 부조금(扶助金)을 내고 나면 식권이란 것을 하나씩 주는데, 하객은 이것을 받아서 지정된 식당에 개별적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더 바쁜 사람은 결혼식에 가는 다른 사람 편에 부조금만 보내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하객은 예식에 참여하고 함께 식당에 가지만 이것을 잔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식사 대접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객들도 삼삼오오 식당에 가서 자기들끼리 밥 먹고 얘기하고 떠들다가 적당한 시간에 헤어지게 됩니다.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자기들끼리 어떤 다른 찻집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결혼 당사자나 부모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랑신부와 부모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폐백례를 치루느라고 늦게야 식당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제야 신혼부부와 부모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따로 마련해 둔 상에서 식사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랑신부가 신혼여행을 떠나면 모든 행사가 끝납니다. 이 과정의 어디서도 「잔치」라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결혼식은 있어도 잔치는 없습니다.
국어사전에 「잔치」는 「경사에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청하여 즐기는 일」로 되어 있습니다. 결혼식이 경사임은 사실이지만 우선 차려놓은 음식이 없습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이 있지만 예식장과는 거리도 떨어져 있고 또 아무 때나 가면 안 되고 일정한 시간에만 식사가 제공됩니다. 그리고 식사를 실제로 제공하는 사람들은 경사를 치르는 집안과 아무 상관없이 다만 값을 받고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초청한 사람과 초대받은 사람 간에 직접 친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별로 즐길 일이 없어집니다. 실제로 소위 「피로연 장소」라고 하는 식당에 가보면 모두들 별로 즐기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잔치가 없습니다. 잔치가 있어야 음식도 풍성할 뿐 아니라 하객들의 즐거움도 있고 거기서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혼인잔치는 잔치가 없으므로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니까 결혼은 왕의 아들이 하지만 잔치는 왕이 베푸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잔치를 베푸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그래서 초대된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의 손님들입니다.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초대된 분들을 기쁘게 참석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이 『가만있자! 이 사람이 누구더라?』한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꼭 이럴 때만 연락하누만!』하더라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덮어 놓고 초청장을 보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경축하고 기쁘게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을 엄선해야 합니다. 이렇게 초대된 사람이 밭에 일하러 가기 위해서나 가게에 장사하러 간다는 핑계로 잔치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밀지 않을 때는 아마도 초청자를 어느 정도 무시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두고 엄선을 해서 초청을 했는데 초청받은 사람이 아무 기별도 없이 제 할 일만 한다면 당연히 초청한 자는 화가 나야 합니다.
참석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물론 대부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겠지만, 혹시 체면이나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서 즐겁지는 않더라도 기쁘게 참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쁘게 부조금과 함께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불평하면서 마지못해 참석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있어도 분위기는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억지로 참석하여 잔치분위기를 흐려놓은 것은 예복을 갖추지 않고 참석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참석하지 않은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누가 혹시 주일미사에 억지로는 참례하지 않으려고 주일미사에 가는 사람 편에 헌금만 보내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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