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기가 선선한 바람으로 변하는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여유를 갖고 싶어 한다. 내적으로 가치로운 무엇인가에 몰두하려는가 하면, 자신의 모습을 옷이나 머리 형태, 화장 등으로 바꾸어 보려는 외적인 욕구도 일어나는 계절이다. 이러한 것은 삶의 멋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나라마다, 시대마다 또 사람마다 멋의 과점은 다르나 멋을 찾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진취적이며 창의적이고 개성을 존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성과 다양화를 어느 때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이 시대에 멋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근래에는 젊은 여성이든 중년 여성이든, 나이에 상관없이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은회색빛 입술, 붉은 갈색 머리와 가늘게 정리한 눈썹을 유행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버스에서 똑같은 모습의 화장을 한, 병자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대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미(美)와 패션에 동참하는 그들에게서 로봇이나 복제인간을 보는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 것은 나의 과민성일까?
우아함이 깃들여 있는 멋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다가 21세기에는 「우아한」이라는 말이 사어(死語)가 될 것 같은 염려가 앞선다. 모시옷에 비녀를 한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우아하다」라는 의미를 알았는데, 할머니의 멋에는 유행이 그리 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지 않았다.
흘러 다니는 유행에 자신을 내맡기며 미적(美的)인 관점과 행동양식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자신의 이미지를 간직하는 보수적인 여성보다 당당한 사회가 되고 있다. 매년마다 범국민적으로 미(美)의 성향이 바뀌어, 전통과 뿌리가 없이 유행만 바람처럼 불고 있는 곳의 문화적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양화를 부르짖는데도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행이 되고 있는 외국인 광고모델을 흉내내는 것도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며, 차갑고 생명이 없어 보이는 것이 지적(知的)이라고 여기며 광고와 선전에 잠식되어 가는 우리의 수용력에 날카로운 의문을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화장품 광고의 노예가 된 여성들이 많은 곳은 없으리라.
이십 년 전 어머니의 옷을 고쳐 입으면서도 멋을 부릴 수 있는 지혜로운 여성이 많은 사회라면, 문화적 긍지를 가져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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