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9일(월요일)아침.
아직 한번도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라노(Rano) 지역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라노지역은 1백년전, 부족간의 전쟁을 피해 정글속으로 이주한 원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신앙촌이며 현재 8백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않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러…
라노지역을 찾아 나선 것은 틸랑본당 지역 원주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잡풀처럼 피어나는 신앙의 신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동행한 사람은 틸랑본당에서 사제 수업을 받고 있는 알베르또(Albertoㆍ26) 신학생. 알베르또 신학생과 단둘이서 길을 나서자니 걱정이 앞섰다. 그도 라노지역 방문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로이스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 중간 지점에서 현지인을 만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알로이스 본당신부가 말한 라노 지역까지 소요 예상시간은 3시간.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이 3시간은 현지인의 걸음 속도로 계산한 것이었다.
3시간 정도 걸리는 설악산 등반을 생각하고 길을 나섰지만 정작 4시간이 넘는 밀림 도보 행진에 고생을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낯선 이국에서 간단한 회화 밖에 하지 못하는 알베르또와의 동행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손짓 발짓을 써가며 겨우 기본적인 대화만이 가능한 사이였지만 알베르또는 왠지 친근감을 주는 성실한 신학생이었다.
코코넛 숲을 4시간이나 걸어
알베르또의 제안으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까지는 차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낭가블로(Nangablo)공소를 지나 1시간 정도 덜컹거려 도착한 곳은 니랑클리웅(Nirangkliung)공소. 이곳부터는 걸어서 가야 했다.
니랑클리웅에서 라노공소까지 우리를 안내해줄 라이(Bernardus Rayㆍ55)씨를 만났다. 20년간 중학교 교사생활을 한 라노씨는 이곳에서 몇 안되는 지식인 중 한명이었다.
처음 들어선 밀림지역에는 생각보다 걷기 편한 길이 나있었다.그러자 잠시뿐 이내 나무들이 길을 막았으며 아름드리 자란 코코넛 나무 사이를 비집고 길을 열어야 했다. 코코넛 나무에는 많은 열매가 널려 있었는데 원숭이들이 먹다 버린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시간이 지나자 걷지 못할 정도로 피로감이 밀려왔고 이내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산을 오르는데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쉰다섯의 라노씨의 빠른 발걸음 조차도 쫓지 못했다. 힘에 부쳐서라기보다 갈증때문에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 졌다.
잠시후 신기하게도 땅밑에서 물이 솟아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허겁지겁 물을 마시기 위해 달려가자 라이씨는 급히 앞을 가로막아 섰다. 물을 먹지 못하게 말리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샘물이나 계곡물은 모두 다른 지역을 거쳐서 내려오기 때문에 중간에 오염되는 경우가 많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원주민 모두가 장작불을 사용해 물을 끓여 먹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공터만 있으면 신앙촌 형성
1시간 정도 수풀을 헤치고 나갔을까. 수풀사이로 작은 원주민 마을이 나타났다. 오랑꼬띵(Oring Koting)공소. 작은 공터만 있으면 신자 마을이 형성되는 이곳의 특성상 이곳에도 아담한 공소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80여 명 규모의 작은 산중 마을 오랑꼬띵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기자는 라노지역 방문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이곳까지 온 것만도 의미가 있는 이상 더 이상 무리를 하며 행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씨의 재촉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또 다른 작은 마을 데뚱리콩(Detung Likong)으로 향했다.
라노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데뚱리콩 부터는 외지인의 발길이 한번도 없었던 지역이다. 데뚱리콩에서 만난 아이들은 지금까지 봐온 틸랑본당 아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낯선 이방인을 보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집안으로 숨어들었고 성인 남자들만이 나와 반겨주었다. 여자들은 집안에서 내다볼 뿐 나오려 하지 않았다.
불시에 방문한 낯선 이방인이 이들에게는 충격으로 비춰진 듯 했다. 겁먹은 눈으로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며 달랜 우리는 바로 라노 지역으로 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코넛 나무 숲이 계속 이어졌다.
데뚱리콩에서 1시간 남짓 걸었을때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깊은 숲속에 자리잡은 라노에 드디어 도착했다.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보였고 어린 아이들은 모두 집안으로 황급히 숨어버렸다.
라노에 도착한 직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힘들게 걸어서 도착한 산중에,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이런 산중에 한국의 왠만한 성당 규모의 거대한 공소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축 기술. 현대적 건축 기법을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을 이들이 짓고 있는 공소 건물은 한국에서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그런 건물이었다.
틸랑인들의 신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한국교회의 신심을 돌아보는 반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안내인 라이씨는 마을주민 스스로가 나서서 공소건물을 짓는 것이라 했다. 아직 기초 공사만 해 놓은 상태인 라노공소 건축은 공사비가 모자라 중단된 상태였다.
풍부한 목재로 건축기술 발달
틸랑본당 지역의 원주민들은 1백명 단위의 마을만 형성되면 바로 공소건물 건축에 들어간다. 이것은 이곳에서 당연시되고 있었으며 신앙이 바로 이들 생활 깊숙한 생활안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풍부한 목재는 마을 주민 스스로 공소를 건축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축기술 덕택인지 공소건축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한 가정을 방문, 간단한 음식을 나누면서 짧은 그들과의 만남을 만족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순수한 신앙…아름다운 삶…
더 이상 여기에 머무는 것은 그들의 생활에 혼돈만을 불러 일으킬 따름이었다. 그들은 카메라 후레쉬의 번쩍거림에 매우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들 나름대로의 삶과 신앙을 잘 일궈가는 곳에서 이방인의 출현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발을 신지 않고 지내는 이곳 사람들에게 운동화를 신은 이방인의 모습은 외부 세계에 대한 헛된 동경심만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라노를 떠났다. 처음보는 이방인의 떠남이 아쉬운 듯 라노 아이들이 거리를 두고 20여 분간 따라 왔다.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쯤 날이 어두워졌다.
내려오는 동안 줄곧 라노인들의 신앙과 삶을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각인해가며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자연안에서 자연과 함께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라노인들의 삶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도움주실분=국민은행 303-21-0977-275, 농협 209-02-308857 곽호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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