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지역 탐사 다음날, 틸랑본당 원주민들의 집에서 기거하며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틸랑본당 주임인 알로이스 신부의 공소 방문 미사를 따라 나선 일행은 1시간이 넘게 버스로 이동, 오후 늦게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하가라후(Hagarahu) 공소에 도착했다.
공소에는 8백여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대지진으로 피폐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곳에서도 일행은 원주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행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댔다.
외지인에 대한 그들의 환영 예식은 1시간 동안 축제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노래와 춤이 일상 생활안에 녹아들어 있는 원주민들의 넉넉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공소에서의 하룻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기가 없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원주민 전통 가옥에는 동물 기름을 사용한 낯익은 호롱불이 간신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이불이 없어 전통 의상 이깟을 입고 누웠는데 밤이 되자 고산지대 특유의 추위가 엄습해와 밤새 떨어야 했다. 주방에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고 침실도 흙바닥에 대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침대가 전부였다.
감당할 수 없는 극도의 빈곤 상태, 원주민 가옥에서의 하룻밤은 빈곤의 최대치가 무엇인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빈곤에서 오는 그 어떤 근심이나 삭막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마을 밖 먼길까지 따라오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틸랑본당으로 돌아오던 길에 일행은 뜻밖의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접할 수 있었다. 대규모 장터가 열린 것. 장터는 유통의 의미보다 물물교환 형식이 강해 보였다. 틸랑성당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장터는 한국의 5일장처럼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는데 대부분 농산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닭을 안고 나온 아이부터 집에서 만든 전통의상 이깟을 들고 나온 아낙네까지 장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틸랑 신자들의 활기찬 생활력을 보여주었다.
틸랑 사람들이 일궈가고 있는 매일 매일의 삶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분명 그들 나름의 활기에 차 있었다.
이들에게 과학 선진 문명은 별로 필요 없어 보였다. 아니 그들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알로이스 신부는 선진 문명사회에서 유입되는 향략 문화의 유입으로 틸랑 사람들이 순수함을 잃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알로이스 신부는 『원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작은 성당 건물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신경영 농법뿐』이라며 누누이 강조했다.
마지막날 밤, 일행이 숙소로 사용하던 성당에는 2백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등 떠나는 이방인들을 위한 성대한 환송식을 열었다.
환송식에는 변변한 음식 하나 차려지지 않았고 거창한 프로그램도 없이 소박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진정 이방인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함께 간 일행은 틸랑 사람들의 삶에 깊숙히 젖어 있었다. 비록 먹고 자고 입는 기본 의식주 생활은 불편했지만 그들의 순수한 신앙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때문에 일행은 떠나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크리스찬의 삶을 살기 위해선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건네지기도 했다.
떠나는 날 10여 명이 마우메레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이별이 아쉬운 듯 그들은 좀처럼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문명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틸랑본당 사람들의 순수한 신앙과 진지하게 접근하는 삶에 대한 태도, 바로 그것이었다.
*도움주실분 : 국민은행 303-21-0977-275, 농협 209-02-308857 곽호인 신부
◆ 정글을 누비는 천사 평신도 선교사 신따
밀림 속 공소 다니며 신농법ㆍ생활개혁 전수 야학ㆍ교리교사하며 평신도 활동 주도
섬 밖 구경ㆍ선진농법 배우는게 꿈
틸랑본당 교리교사 신따(MariaYasihta)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물론 플로레스 섬에서의 일정 동안 늘 함께 했다는 친근감도 있지만 그녀가 보여준 신앙은 남다른 것이었다.
25살 유일한 대졸 여성
틸랑본당 지역에서 유일한 대학 졸업자인 신따는 25살의 젊은 여성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헌신적인 전교 활동을 자청해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순한 교리교사로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교리교사라는 직함은 명목상 가지고 있는 직책에 불과했다.
신따는 산속에 위치한 각 공소를 다니며 원주민들과 함께 숙식하며 신(新)경영농법을 가르치는 등 틸랑본당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생활개혁 운동 및 평신도 활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된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물론 그녀의 몫.
가축사육법 배우며 봉사 준비
그녀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닭 돼지 등 가축 사육법 등을 배우는 열성을 보이며 섬 원주민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플로레스섬 엔데교구에서 운영하는 엔데사목대학에서 5년 과정을 수료한 신따는 종교, 교리교수법, 역사, 교회사, 교의신학을 공부한 인도에시아에서 몇 안되는 가톨릭 재원이다. 사제수가 부족한 플로레스섬에서 신따와 같은 평신도 선교사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
헌신적인 노력에 감명
특히 신따에게서 감명을 받은 것은 바로 헌신적인 봉사정신이다. 아무리 힘든 농삿일도 마다않고 틸랑본당 신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신따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아직 한번도 섬 밖을 나가본 경험이 없는 신따는 말로만 들어온 섬 밖의 문명세계를 접하고 선진 농법을 배우는 것이 꿈이다.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뒷바라지를 마다 않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번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오지 신앙촌 기행에는 원주교구 곽호인 신부와 고정훈(안또니아ㆍ50), 강호석(루치아노ㆍ45)씨가 함께 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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