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면서 한국인인 조선족. 그들은 모국의 발전소식을 듣고 지난 87년부터 한국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15만여명 정도의 동포가 한국을 다녀갔고 지금도 약 4만여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소위 3D업종의 산업현장에서 부족한 산업인력을 대신 매꾸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정책 및 산업연수생 제도의 실패 등으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임금체불과 산재, 초청사기 등에 휘말려 패가망신한 동포가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을 다녀갔거나 소문을 들은 중하위층 조선족 중 70%이상이 한국에 대해 절망적인 증오감을 갖고 있을 정도로 조선족 사회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가톨릭신문사는 국내 취업 조선족 근로자 문제의 실태 및 대처방안 등을 취재, 동포로서 동질성 회복과 중국사회에서의 자립 지지, 통일촉진 인자로서의 역할 등을 다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실태 및 현황
잘 살게 된 모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 따라서 서너 집 건너 한집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있거나 한국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체 2백만명의 조선족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기 시작한 90년 이후 6년간 한국을 다녀간 동포들이 약 15만명에 달하고 그 중 3만여명이 입국과정 또는 국내 취업도중 사기를 당했다는 통계에서 말해주듯 중국 조선족 사회는 온통 한국열병에 빠져 있다.
한국에 가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일념에 빠져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현재 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은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와「친인척 방문」등 두 가지.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가 중국에 지정한 10여개의 송출업체를 통해 들어올 경우 1인당 경비조로 2백만원에서 5백만원 가량의 비용이 드는데 이 중 1백만원은 공식비용이고 나머지는 웃돈이어서 많은 조선족 사이에서는 고율의 급전을 빌려 비용으로 지불, 한국에서의 취업을 통해 갚겠다는 계산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5백만원은 5년 이상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거금이어서 혹 사기에 걸려 기대했던 한국행이 무산되기라도 하면 곧바로 집안붕괴나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한국에 입국한 연수생들의 경우, 연수생이라는 신분제약에 따라 시간외 잔업수당까지 합쳐 월 40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1~2년의 연수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대부분 당초 사업장을 이탈, 월급이 많은 곳을 찾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때부터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되고 악덕 기업주 등은 이것을 빌미로 중국 조선족 동포들에게 협박을 일삼고 임금을 주지 않는 등 갖은 행패를 다 부리게 된다.
특히 현행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이러한 산업 연수생 제도나 친인척 방문 제도는 국내 입국 후 불법체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구조적 모순을 중국 동포 및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가장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신분상 법적으로 불리한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빌미로 임금을 체불해서 주지 않거나 산재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경찰에 고발해 추방해 버리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업주들의 태도이다.
목포의 김 양식장에서 1년 3개월간 일했다는 최철수씨는 『1년 3개월간 뼈 빠지게 일하고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노임을 미뤄오다 끝내 주지 않고 업주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말하고 『그 일이 있은 후 한국사람만 보면 따귀를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남북한이 전쟁해서 모두 다 죽어 버렸으면 하는 감정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흥분했다.
실제로 「귀향한 외국인 노동자 체불임금 산재보상 찾아주기 시민모임」은 지난해 8월말부터 1개월간 중국 동북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조선족 거주 지역에서 중국교포 피해사례를 조사, 1백12건의 산재사건과 1백8건의 임금체불사건 그리고 53건의 기타 고소사건을 접수받기도 했다.
이 같은 피해사례는 중국에서 불과 한달여만에 표피적으로 조사한 결과로 국내에서 산재나 임금체불 등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강제 출국의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동포들을 포함하면 드러난 수치의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조선족 산재 피해자들과 임금체불 피해자들은 귀국 후 오랫동안 질병과 싸우다가 사망하거나 막대한 치료비를 견디지 못해 치료도 중단한 채 빚더미에 올라 앉아 신음하고 있는 상태며 급전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집안이 풍비박산난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고 추방당한 많은 중국 교포들은 조국이 자신들을 차별대우하면서 가혹하게 일을 시키고도 임금까지 주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는 불법체류자로 신고까지 하여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 왔다며 치를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결 방안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지난 6년간 한국에서 당한 각종 피해사례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약 2백80억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 지도층 인사들은 사기극의 주모자가 한국인이라는 점과 이를 구제할 궁극적인 책임이 모국에 있다고 보고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사법 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 측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듯 법무부를 중심으로 중국 조선족들의 탈법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현행 3개월간의 체류기간을 최장 3년으로 늘리고 입국자들의 연령도 55세 이상에서 41세 이상으로 낮춰줌으로서 불법체류자를 줄여 보겠다는 취지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재오 의원 외 28명의 의원들은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안」을 제출, 외국인 근로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나 기타 외국인 노동자의 구별없이 적용하자는 취지로 국가의 차별이나 민족차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고 동등하게 외국인 근로자를 대우하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사회일각에서 중국 조선족 근로자들은 민족문제 차원에서 타 외국인 근로자들과 구별을 두어 보호하자는 의견도 많지만 중국 조선족 근로자들은 그 같은 방법을 굳이 원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어와 문화, 식생활, 사고방식 등 모든 부분에서 우리와 같은 조선족들의 한국 취업은 동남아 등 외국인 근로자와는 엄연한 구별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선족 동포들은 언어가 같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이점과 함께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산재사고 등도 적게 일어난다는 통계도 한국 기업체의 조선족 선호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특히 10월5일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는 서울 발산동본당 김홍진 신부를 비롯 각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재중국 동포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발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제도의 개혁, 국내 조선족 돕기, 중국 조선족 사회의 지원 등을 통해 그동안 저질러진 잘못들을 수습하고 민족애적인 차원에서 조선족 근로자 문제를 풀어간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조선족은 △국내기업의 중국 진출을 도울 수 있고 △국내 노동력의 공급자이며 △남북한 경제협력을 중개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북한에 전파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역할도 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품어 안는 노력은 더욱 배가 돼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