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떠날 때
내 가슴 반은 무너지고
남은 가슴 반에 그대를 묻었으니
나는 그대의 집이노라
살아서는 멀리 헤어져 서로 떠돌고 한구석 문고리 잠겼던 마음
죽어서는 남김없이 다 풀어 놓았으니
무시로 빈 가슴 문 열고 들어와 편히 쉬시라(가을이별 중에서)
한동안 칩거했던 문단의 원로시인 홍윤숙(데레사ㆍ71)씨가 오랜만에 신작시를 곁들인 에세이집을 펴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별을 노래한다」(제삼기획 간)에서 시인은 인간사의 가장 깊은 슬픔 중 하나인 이별의 정한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지난 92년 저명한 평신도 신학자였던 부군 양한모씨와 사별한 후 시인은 「벽에 걸린 양복 칫솔 머리빗 빈 지갑 수첩 속」에서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질기고 질긴 기억의 뿌리」를 저버릴 수 없었던 듯 보인다.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은 「그대 이 세상에 없음」을 믿기지 않게 하고 『지금도 당신은 그 방에 그냥 앉아 있다』
1부 「서시」에는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보낸 이별의 아픔과 애틋한 그리움, 허망한 마음이 10여 편의 시 행간 마다 흥건하게 녹아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이별의 아픔과 허망은 그대로 2부 「한 사람을 떠나 보내고」에로 이어진다. 부군과의 사별을 주로 해서 시인이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에서 오는 절망과 허무를 고통스럽게 고백하고 있다.
책머리에서 시인은 『허망! 허망이란 말 밖에는 인생에 대하여 할 말이 없다』고 탄식한다. 허망과 절망이 너무나 크고 거대하기에 오히려 시인은 이별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아예 있던 자리의 흔적도 없이 온전히 버려지는 이별을 고대한다.
『어떻게 아름답게 이별할 것인가. 해 아래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 바람에 섞이듯 그렇게 자취없이 사라지는 소멸, 이별의 법을 배우고 싶다』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 깊어가는 가을 어스름한 저녁나절 이별의 의미를 아는 시인과 함께 이별여행을 떠난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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