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이 이 두 (사랑의)계명에 달려 있습니다』(마태 22, 40)
신문에서 「무작위 살인」이란 제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라도 죽어라는 뜻으로 병원에서 요구르트 병에 독약을 섞어 넣어 둔다든지 술 취한 상태에서 여의도 광장을 승용차로 질주한다든지 한 경우에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작위 사랑」이란 말도 있을 법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관리하지 않은 낚시터는 어디나 지저분하고 더럽습니다. 선배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고 음식물 찌꺼기는 썩으면서 악취를 풍깁니다. 그래서 나는 후배로서 우선 낚시터 청소로부터 낚시를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관리를 하는 낚시터도 상황은 비슷한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화장실은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구역질과 욕지기가 동시에 나옵니다. 한번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바로 이것이 「무작위 사랑이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 뒤에 누가 일을 볼지 모르지만 누구라도 그 사람은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까 기쁘게 청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얘기로 구라파에 가면 공중 화장실의 상태가 대체로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화장실 낙서입니다. 이쯤에서 낙서 얘기는 각자 상상에 맡기고 그만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근년에는 소위 기초질서 위반이란 규칙이 생겼습니다. 이 규칙은 대체로 공중질서를 잘 지키자는 뜻으로 벌금을 매기는 제도로 알고 있습니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자고 아무리 해도 잘 안되니까 이제는 벌금이 무서워서라도 강제로 지키게 하는 규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강제적인 것에 반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잘 지키게 하는 방법이 없어서 그랬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명칭만큼은 바꾸었으면 합니다. 기초질서 위반자를 적발하지 말고 「무작위 사랑 실천자」를 선택하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여 누구에게 돌아갈 지도 모르는 사랑의 헌금액을 정해놓으면 돈을 내더라도 기분이라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받은 돈으로 여러가지 공중시설을 확충하고 관리하는데 사용한다면 어떨까 합니다. 길에다 침이나 껌을 뱉으면 그것을 청소하기 위하여 사람이 필요할 것이며 이를 청소하고 나면 그 길을 누구나 기분이 상하지 않고 즐겁게 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무작위 사랑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법의 명칭도 「무작위 사랑 실천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란 항상 누구를 구속하고 벌을 주는 부정적인 인상만을 심어 줄 것이 아니라 선행을 부추긴다는 긍정적인 인상도 함께 심어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지금보다 기쁘게 법이나 규정을 따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벌이 무서워서 강제로 법을 지킨다는 것은 어쩐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 같고 따라서 인격적인 차원에서 자존심이 상합니다.
무작위 사랑의 실천은 꼭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까지 적용될 것입니다. 공중목욕탕에서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서로 지켜야 할 도의가 있습니다. 무엇이나 공유하는 곳에서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하여 자기가 직접 대상을 찾아 도우는 것이 아니라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헌금을 기탁하는 것도 무작위 사랑의 실천분야가 될 것입니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누구이든 불우한 사람이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소년소녀 가장을 위하여,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하여, 수재민을 위하여 등등 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려고 표나게 큰 사랑의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흔하고 작은 그래서 기초질서를 지키고 누구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표나지 않은 사랑부터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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