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전교의 달을 마감하며 잔잔한 신앙의 삶을 통해 조금씩 마을주민 전체를 신앙인으로 변화시켜가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미전리 마을「기도의 집」을 찾았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큰 산을 움직이듯이 촌노(村老)들의 열심한 신앙생활이 전 주민들을 움직이고 있는 미전리 마을은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영동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청산」방면으로 10여km를 달리면 속리산을 먼발치에 둔 「미전리」라는 작은 마을이 오른편으로 보인다.
옛날엔 밭농사만을 경작했던 이곳이 저수지가 생기면서 논농사를 시작하게 되자 「쌀밭」이 됐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미전리」(米田里)라 불려졌다고 한다.
밀양 박씨가 12대째 자리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인 미전리 마을은 여느 시골마을처럼 풍요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청주교구 청산본당 최광혁 신부의 안내로 미전리 마을을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랐다. 마을 어귀에 커다란 성모상이 마치 천하대장군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25가구가 사는 미전리 마을은 그 중 10가구가 교우라고 한다.
집성촌으로 아직까지 체통과 예의범절을 중요시할 뿐 아니라 유교적 예법이 많이 살아있어 여자들만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됐지 아직까지 남자들은 마음이 있으나 내놓고 천주교를 믿지 못하고 있다고들 한다.
『이런 유교전통이 남아있는 집성촌에 성모상이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최신부는 말했다.
10가구라 해봤자 신자는 겨우 10명뿐이다. 그것도 모두 환갑을 지만 할머니들이 전부며 제일 어린 사람이 62살이고 78세 노인이 제일 웃어른이라고 한다.
힘없는 이 시골 할머니들이 신앙의 힘으로 점차 미전리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들은 지난 1983년 10월, 현재 이곳 레지오 마리애 「치명자의 모후」쁘레시디움 단장인 양옥동(엘리사벳ㆍ62)씨 집 웃목 빈터에 「기도의 집」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본당인 청산성당에서 공사하며 버린 폐자재와 당시 돈 7천원을 모아 20평짜리 기도의 집을 마련했다.
『당시 하느님의 일이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기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양옥동씨는 『기도 덕분인지 의외로 남자 분들이 아무 반대 없이 잘 도와줘 쉽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기도의 집을 마련하자 할머니들은 한 달 후 2미터 높이의 성모상을 본당신부의 협조로 구해 마을입구에 모시기로 했다.
동네 어른들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은근히 바깥양반들을 통해 압력(?)을 넣기도 했으나 당시 유일한 남자 신자인 박요한씨(작고)의 추진력으로 성모상도 세워졌다.
기도의 집이 마련되자 미전리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에「레지오 회합」을 갖고, 목요일 저녁이면 2시간씩 「성시간」을 지금까지 13년 동안을 빠짐없이 가져오고 있다.
또 당시 돈 10만원으로 종을 구입, 양옥동씨 집 감나무에 종을 매달아 아침 6시와 정오, 저녁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삼종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잠을 깨운다』『시끄럽다』고 마을 어른들의 호령이 불같았지만 이제는 삼종이 울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걱정할 정도로 마을주민 전체가 익숙해져 있다고 한다.
또 아무리 바쁜 농번기 때라도 삼종을 치기 위해 양엘리사벳씨는 일손을 놓고 오고, 신자들도 삼종을 듣고 논과 밭에서 삼종기도를 바치는가 하면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웅얼웅얼 따라하기도 한다.
쑥스럽다며 이름을 밝히길 끝내 거부한 양옥동씨의 남편은 감나무에 매달린 종이 을씨년스럽다며 사비를 털어 종대를 만들어 주는가 하면 기도의 집 입구에도 시멘트 바닥을 깔아주는 등 외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천주교를 믿는다고 해서 반대하지 않았지만 못마땅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던 바깥양반들도 차츰 이들의 열심에 감화돼 6명이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유교적 집성촌에다 모두 외짝 교우들인데도 불구하고 수녀 2명과 수사 1명을 배출했다.
요즘엔 이 기도의 집이 알려져 멀리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도 신자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하고 간다고 한다.
기도의 집 제일 막내라는 김영헌(안젤라ㆍ62)씨는 『남자들의 고집을 꺾어 신앙을 받아들여 미전리가 천주교 마을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면서 온 마을 친지들이 기도의 집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학수고대했다.
본당신부가 마련해 준 14처와 커튼으로 기도의 집 새 단장에 여념이 없는 미전리 마을 10명의 할머니들은 비록 외모로는 보잘것없는 촌노처럼 보일지 몰라도 생의 모든 것을 신앙과 연결 지으려는 요즘 시대의 몇 안되는 참 신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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