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한 남자어린이는 반 아이들이 떠들어서 담임선생님에게 전체로 손바닥을 맞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한다. 선생님이 하루도 매를 들지 않은 날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이 아이는 덧붙여 말한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보고 폭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폭력을 배우며 자라고 있는 현실이다.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단체로 받아야 되는 체벌 때문에 개인적 감정표시를 억눌려야 하며 서서히 폭력에 대해 불감증을 가지게 된다. 폭력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린이 안에 폭력이 무의식화 되어가고 있다는 현상이다.
어린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연대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단체벌은 참으로 책임의식을 느끼게 하는 교육적 방법인가? 학교는 집단훈련의 장소가 아니라, 어린이가 중심이 되고 교사는 어린이의 신체적, 지적, 정신적 잠재력이 계발되도록 안내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만남의 곳이다.
어린이속에 잠자고 있는 무한한 세계를 하나씩 깨워주는 것이 특히 초등학교 교사의 임무인데, 어린이들에게 「때리는 교사」의 인상을 새겨준다는 사실을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어렵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힘으로 해결하는 쉬운 방법에 젖은 교사들은 교육개혁의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세계적으로 교육에 가장 관심(?)이 높다는 우리나라에서 교사의 체벌이 때로는 부모들의 인정하에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학교의 교사폭력에 부모들이 민감하지 않은 것은 부모 또한 가정에서 어린이들을 때린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들은 작고 큰 폭력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자라고 있다.
어린이는 맞으면서 커야 한다는 부모와 교사의 의견에는 맞지 않고 자란 어린이는 유약해져서 이 세상을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가 있다. 과연 맞고 자란 어린이는 참된 의미에서 강하게 자라는 것일까?
교문 앞에는 학교폭력을 추방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우리는 어린이에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폭력의 합법성을 가르치고 있다.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전쟁의 종말을 외치면서도 정작 가정과 학교에서는 어린이는 맞으면서 커야 한다는 모순된 논리를 가지며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어린이를 때리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은 이상이 아니다. 책임 없이 평화를 외치기 전에 하느님의 선물인 어린이의 존엄성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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