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치명한 아홉 명의 순교자들 가운데서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강완숙(골롬바), 최인철(이냐시오), 김현우(마태오), 문영인(비비안나)외에 다섯 명의 순교자들은 그 행적이 아주 미미하게 알려져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홍필주의 인척으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홍정호(洪正浩)의 경우는 그 세례명조차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현(李鉉ㆍ안토니오), 김연이(金連伊ㆍ율리안나), 강경복(姜景福ㆍ수산나), 한신애(韓信愛ㆍ아가가) 등 네 명은 문초기록에서 그 행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현과 강경복은 당시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순교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현은 경기도 여주 출신의 화가였던 이희영(루가)의 조카로 1797년 무렵에 우연히 여주읍에 사는 교우로부터 교리를 듣고 입교한 뒤 교리를 강습하였으며, 주문모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때 받은 세례명이 안토니오였는데, 이를 야고보라고 적은 기록도 있다. 이후 그는 홍필주(필립보), 정광수(바르나바), 김건순(요사팟), 김종교(프란치스코)등과 가깝게 지내면서 교회일을 도왔으며, 친척과 친구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신유박해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그 이름이 박해자들의 명단에 오르게 되었고, 마침내 고향에서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그의 집에 숨겨 두었던 교회서적들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더 많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김연이는 한소사라는 교우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강완숙과 함께 주문모 신부를 보살피며 생활하였다. 그리고 역적으로 몰려 강화도로 유배된 왕족의 부인들 즉 송마리아와 신마리아가 살고 있던 전동의 폐궁(廢宮, 즉 양제궁)을 오가면서 그곳 궁녀들과 교리를 강습하였으며, 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알렉산델)을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다가 피신시킨 뒤에 체포되었다.
김연이의 신앙 동료로 그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이가 바로 굳은 신심으로 유명한 강경복이었다. 폐궁의 궁녀였던 그는 1798년 무렵부터 강완숙의 집을 오가며 교리를 배운 뒤 열심히 이를 봉행하였는데, 이후로는 갖은 핑계를 대어 어떤 미신 행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00년 가을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 그 열심이 더해져 언제나 순교할 원의를 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우들과 함께 교리를 강습하면서 서로의 신심을 북돋아 주었고, 율리안나와 함께 주신부를 보살폈으며, 신부가 궁궐을 오갈 때면 그의 시중을 들거나 정성껏 미사준비를 하였다.
한신애는 양반집안의 후실로 들어가 집안에 전해져오던 교회서적을 읽고 있다가 딸과 함께 강완숙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이후 주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정복혜(간디다) 등과 가깝게 지내면서 집안에 교회서적과 성물 등을 감추어 두고 봉행하였으며, 때로는 정광수 등을 불러다 집안 노복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들 네 명의 교우들은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여러 차례에 걸쳐 함께 문초를 받았다. 형리들은 그들로부터 황사영의 거처를 알아내고, 또 교회서적들과 성물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교우들을 찾아내기 위해 회유하거나 형구들을 늘어놓고 위협을 하곤 하였다. 그 와중에서 율리안나와 아가다는 잠시 마음이 흔들려 약한 말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안토니오와 수산나는 조금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고, 함께 갇혀있던 강완숙(골롬바)은 마음이 약해진 동료들을 격려하면서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수산나는 특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순교의 기쁨을 나타내곤 하였다. 그리고 형조로 이송된 후에는 모진 형벌로 다리 살점이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곧 성교(聖敎)라.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며, 어떤 고통이 눈앞에 닥쳐올지라도 절대로 배교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답하였다. 형리들은 이러한 수산나의 말을 요녀의 말과 같이 여겼다고 한다.
마침내 이들 네 명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형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시체가 여러 날 동안 현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더운 날씨인데다가 비까지 내렸으므로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되어야 마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매장하라는 명령이 위로부터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시체가 조금도 부패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살은 성한 채 그대로였고, 얼굴은 여전히 홍조를 띠고 있었으며, 목에서 흘러내린 피는 신선하여 굳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주님께서 영광된 순교자들의 시신을 보호해 준 것이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