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지그시 감은 눈에는 경건함이 어려있다. 사제의 손끝을 따라 물이 흐른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맑은소리와 함께 사제의 음성이 들린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례를 줍니다.” 부활을 맞이해 3월 31일 수원교구 안산대리구 광북본당(주임 허정현 신부)에서 예비신자가 물과 성령으로 죄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 이날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장엄한 교회의 큰 축제이자 전례주년의 중심이다. 자신을 희생해 십자가에 못 박혀죽고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신비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 인류구원 행위의 절정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을 피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씻는다. 부활은 구약의 이 파스카의 완성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 성야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사업을 기념하는 해방과 승리의 밤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을 믿는 교회는 이 예수 부활 대축일에 세례성사를 베풀어왔다. 부활과 세례성사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성 바실리오 주교는 「성령론」에서 “세상을 위한 죽음이 하나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도 하나입니다. 세례는 이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라며 세례성사에 담긴 부활의 의미를 설명했다.
일찍이 고대 교회의 예비신자들은 부활성야, 즉 성 토요일 밤을 지새운 뒤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 일찍 세례를 받고 부활주간 내내 흰 옷을 입고 지냈다. 오늘날 역시 예수 부활 대축일은 세례의 기쁨이 가득한 날이다.
예비신자들만이 아니다. 부활성야에는 세례수 축복, 세례성사와 함께 세례서약갱신식이 진행된다. 세례서약갱신식에서는 사순시기를 마치며 마귀와 그 행실을 모두 끊어버리고 거룩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한 세례서약을 새롭게 한다.
허정현 신부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을 저 멀리 둔다는 것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라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는 이제 세상의 삶에서 부활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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