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를 보내며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본당공동체에도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조금은 서로 다른 생각과 언행으로 일관하다보면 의견 차이도 생기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떨쳐버리기도 하지만 때론 한번 혼탁해진 심사는 마음속에 잔영이 되어 좀처럼 우리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수없이 우리에게 교만해지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창세기 11장을 되새겨봅니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을 때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이 도시 한가운데 하늘에 닿을 탑을 쌓는 것을 보고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습니다. 아마도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말뿐만 아니라 우리의 교만한 마음도 일치할 수 없도록 하신 것은 아닐까요? 교만한 마음은 또 다른 교만을 낳고 궁극적으로 일치를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 주신 이웃 사랑과 하느님과의 일치는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맙니다.
금년에도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고 통회해야 하는 성주간을 맞이하며 마음속에 잔영으로 남아 있는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꾸밈없는 성찰과 정성된 기도를 해봅니다. 한때 자만과 오만으로 가득 차 하늘을 향하는 교만의 탑을 세우고 하느님의 집을 떠나 방황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오랜 가뭄 가운데 강바닥처럼 산산이 갈라진 마음과 축 늘어진 지친 육신을 이끌고 한참을 방황하고 있을 때 불현듯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속 교만이 사라진 후 다시 맛본 하느님과의 일치는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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