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뇌병변 3급의 장애를 지닌 남씨는 유기농 수제 쿠키를 만드는 ‘느루’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쿠키를 구우면서 장애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과거, 긴 겨울을 지나 부활의 새싹을 틔웠다.
■ 겨울 땅 박차고 부활 새싹 틔우다
1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씨는 어엿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일반 대학 박물관학과에 입학해 행복한 대학생활을 꿈 꿨지만 갑자기 닥친 변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살핌을 받던 가족들의 품을 벗어나 혼자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사회생활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더디기만 했던 남씨에게 처음으로 겪는 경쟁위주의 환경은 낯설기만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선택도 남씨를 힘들게 했다. 결국 남씨는 2학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이후 남씨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살았다. TV와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낙이었다.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고, 늦게까지 인터넷에 몰두했다. 이처럼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성격 또한 더욱 외골수가 돼 갔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고스란히 가족들의 몫이 됐다. 늘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남씨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부모님이 한마디라도 건네면, 무섭게 대거리를 했다. “내 일에 상관하지마~!” 라는 말이 남씨의 입에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남씨의 모습에 가족들도 지쳐갈 즈음, 우연히 어머니 친구 분으로부터 ‘느루’를 소개받았다. 또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낯선 이를 경계하는 ‘느루’ 식구들의 무표정한 첫인상에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남씨는 동료들과 천천히 어울리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어울려 일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 직접 만든 부활쿠키를 선보이는 남소정씨. 쿠키를 맛본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구웠다고 말했다.
■ 믿음으로 돋은 부활 새싹
남씨를 만나러 찾아간 ‘느루’는 노랑 병아리 모양 부활쿠키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재료를 섞어 반죽한 후, 모양 틀로 찍어내 굽고 포장하기까지, 쿠키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남씨는 ‘느루’의 반장으로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작업장의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힘들어하는 이들은 다독이고, 즐거워하는 이들은 북돋아주는 분위기 메이커다. 작업에 열중하던 찰나, 작업장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서로의 작업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다툼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한 동료가 울어버린 것. “OO씨 스마일~!” 남씨는 욕심을 부린 동료를 타이르고, 울고 있는 동료를 달래는데 여념이 없다. 소란은 남씨 덕분에 금세 정리됐다.
남씨보다 나이가 많다는 ‘느루’의 식구 정다움(로사)씨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말한다. “소정이는 동생이지만 엄마 같아요. 우리한테 잘 해줘요. 그래서 인기가 많아요.” 이어진 제보들도 모두 남씨에 대한 칭찬뿐이다.
요즘 ‘느루’에서는 시기에 맞춰 부활쿠키를 만들고 있지만, 사실 남씨는 피칸쿠키 만들기에 심취해 있다. 피칸쿠키는 ‘느루’에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어려워할 정도로 난도가 높은 작업이다. 잼을 얹을 부분에 구멍을 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 수많은 실패 끝에 얻어진 남씨의 실력은 어느덧 선생님들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느루’ 쿠키 중에 피칸쿠키가 제일 맛있어요. 만들 때도 재밌고, 먹어도 맛있으니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열심히 만든 쿠키로 칭찬을 받을 때면 정말 뿌듯해요.”
피칸쿠키 반죽 위에 새끼손가락으로 조심스레 구멍을 내던 남씨가 쑥스러워하며 미소를 짓는다.
이러한 미소는 남씨의 가족에게도 번져 갔다. 요즘 남씨는 ‘느루’에서 받은 월급을 아껴 동생 용돈도 주고,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맞춰 식사를 대접하는 등 가족에게 더욱 마음을 쓰고 있다. 남씨는 믿고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자기 힘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이다.
▲ 부활쿠키를 만들고 있는 남소정씨. 지난 3년간 실력을 키우면서 동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 미래, 부활 새싹 키우기
남씨는 ‘느루’에서 쿠키 작업 외에도 컴퓨터, 언어, 수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컴퓨터는 남씨의 또 다른 관심분야다. 남씨와 부모님은 컴퓨터를 열심히 배워 컴퓨터를 활용하는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란다. 현재 한글 프로그램 과정을 떼고, 엑셀 작업을 시작했다.
남씨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자 취업 추천을 해오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남씨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근거림도 긴장이 아닌 희망이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준비할 거예요.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야지요.”
남씨는 오늘도 또 하나의 단계를 넘어 부활쿠키를 굽는다. 그리고 노랑 병아리 쿠키가 익어가는 동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하나하나 배워갈 때마다 성취감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부활의 봄 새싹을 선물해주셨어요. 제가 구운 부활쿠키를 맛본 이들이 저의 행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 남소정씨가 직접 구운 부활쿠키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