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이 돋아나는 ‘땅’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 열매와 곡식뿐 아니라 잡초와 곤충도 땅은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땅의 인내와 사랑을 배우고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올해부터 ‘천주교농부학교 생태텃밭’을 시작했다. 귀농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닮은 땅의 가치를 알리고자 마련했다. 아담이 땅을 일구고 돌보던 것(창세 2,15)과 같이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이 직접 농사짓고 가꾸는 생태텃밭에서 ‘돋음’의 의미를 발견했다.
■ 땅에서 돋아나다
지난 3월 24일 천주교농부학교 7기 50여 명의 학생들이 처음으로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를 찾았다. 일 년 동안 직접 돌보고, 가꿔야하는 자신들만의 에덴동산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생태텃밭’이 바로 농부학교 학생들의 에덴동산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제각각 호미와 삽을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유기농 발상지에서 텃밭을 가꾸기로 한만큼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유기농법’이다.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밭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좋은 소출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땅이 살아있어야 했다. 겨우내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에 농부학교 학생들은 생명을 불어넣었다. 환경과 어우러지는 유기농법의 시작은 역시 친환경적이었다. 661.16㎡이 넘는 텃밭에 친환경 퇴비를 뿌렸다. 친환경적 농법이기에 사람의 손길이 그만큼 많이 필요했다. 허리도 아프고, 날씨 탓에 목장갑을 낀 손도 금세 얼어버렸지만 앞으로 가꿀 소출을 생각하면 참을 수밖에 없다.
밭을 준비한 이후, 학생들은 비닐하우스에서 땅콩과 양상추 모종을 심었다. 어린 모종이 다치지 않게 정성스레 땅에 심었다. 흙으로 덮고 나니 농사가 아이 키우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흙을 만지고 농사를 짓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지 미처 몰랐다. 직접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많지 않기에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땅에서 돋아나는 작은 농산물을 가꾸는 일이 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벌써 ‘농부’의 마음이 학생들 깊숙한 곳으로부터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날 생태텃밭 가꾸기에 참여한 농부학교 7기 조성윤(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ㆍ52)씨는 “유기농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내놓을 뿐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생명을 일궈내듯 저희가 뿌린 씨앗이 많은 생명을 일궈내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 천주교농부학교 학생들이 유기농민 서규섭(욥)씨에게 유기농법 설명을 듣고 있다.
▲ 양상추 모종을 심고 있는 천주교 농부학교 학생들.
■ 생명이 돋아나다
농부학교 학생들은 두물머리 ‘천주교 생태텃밭’에서 감자, 땅콩, 옥수수, 들깨, 브로콜리, 열무, 고추, 양상추 등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할 계획이다. 땅을 살리는 유기농법이 쉽지 않은 과정이 되리라는 건 학생들도 잘 안다. 하지만 이들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두려움은 없다.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는 두물머리 유기농민들이다.
천주교 생태텃밭에서의 실습에 앞서 학생들은 두물머리 농민 서규섭(욥)씨의 ‘생태유기농’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서씨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에서 퇴적된 유기물과 나뭇잎이 쌓여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유기질이 풍부한 농토”라며 “유기농업은 땅에서 나온 소출을 바로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농법”이라고 말했다.
12년 경력의 유기농민이 전하는 작물별 재배법과 과정 등 농사에 필요한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했다. 교실에서 듣던 이론수업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유기농법의 철학과 방법에 대해 질문도 쏟아냈다. 아직까지는 농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땅이 가진 가치를 배워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두물머리 ‘천주교농부학교 생태텃밭’은 귀농실습 공간이라는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생명과 자연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아직도 진행 중인 4대강 개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유기농민들과 뜻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땅이 없으면 생명도 돋아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울 우리농이 지난해부터 천주교농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생태텃밭 가꾸기’를 교육과정에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습도 중요하지만, 도시생활자들이 하느님이 주신 땅을 오롯이 지키고자 노력하는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업을 실천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농부학교 운영위원 박정국(마르티노ㆍ48)씨는 “그동안은 이론중심으로 공부한 졸업생과 학생들이 십습에 대한 욕구가 커서 ‘생태텃밭 가꾸기’를 시작하게 됐다”며 “농부학교 자체가 생명농업을 배우는 교육기관이고, 생명농업을 하는 농민들이 어려운 가운데 함께하고자 했다”고 생태텃밭의 의미를 설명했다.
학생들은 2주에 한 번 생태텃밭을 찾을 예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땅의 소출들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체험하고, 실천할 계획이다. 이들은 땅을 통해 생명농민으로, 하느님의 텃밭을 가꾸는 농민으로 돋아날 것이다.
▲ 새내기 유기농민들이 생태텃밭에 심은 양상추 모종. 모든 것을 품는 땅으로부터 작은 생명이 돋아나고 있다.
▲ ‘천주교농부학교 생태텃밭 가꾸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생명의 땅 두물머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유기농민들과 뜻을 함께해 생태텃밭의 의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