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도. 장흥군 노력도에서 배를 타고 30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이곳에는 공소가 하나 있다. 광주대교구 녹동본당 관할의 금당공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공소는 폐허를 방불케 했다. 1m가 넘는 잡초들이 무성했고 한 달에 하루 신부님이 찾아오는 날조차 모이는 신자의 수가 10여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70세가 넘는 어르신들.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되자 많은 섬사람들이 도시를 찾아 뭍으로 떠나면서 신자들도 격감했다. 활기찬 신앙의 터전이었던 공소의 모습은 아련한 추억너머로 사라지는 듯했다.
■ 공소에서 돋은 부활
“여기는 아무도 성당 올 사람이 없어요.”
2007년 3월. 스러져가던 공소에 새로 평신도 선교사가 찾아왔다. 바로 오정심씨였다. 공소회장을 만난 오씨는 5월에 예비신자 환영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공소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인구 자체가 적고 유동인구도 거의 없어 섬의 대부분이 친·인척이고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알고 지냈다. 더 이상 성당에 나오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게 회장의 판단이었다.
신임 선교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냉담교우와 신자들이 아는 사람들의 집부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혼자라서 받아주지 않으면 그 이웃 신자와 함께 찾아갔다. 오겠다고 말만하고 오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다시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단 두 달 만에 예비신자 환영식에 4명을 맞았고 지금은 공소에 나오는 신자만 50명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소 공동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금당도에서 직접 딴 미역과 다시마입니다! 공소를 도와주세요!”
공소의 고충은 신자들의 숫자뿐만이 아니었다. 1999년 공소와 수녀원을 보수하고 교육관을 기공하면서 생긴 빚이 공소 공동체에겐 늘 마음의 짐이었다. 신자 수도 적거니와 어르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금당공소 공동체에게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오정심씨와 공소공동체는 한마음으로 뭉쳤다. 오씨는 조금씩 늘어가는 공소 공동체와 함께 도시 본당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금당도에서 난 미역과 다시마를 팔아, 마침내 올해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공소공동체가 힘을 모은 결과였다.
▲ 금당공소 공동체.
■ 삶에서 돋은 부활
“우리 선교사님 같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오정심씨가 놓은 불씨로 나날이 활기를 찾아가는 공소의 모습을 본 공소 신자들에게 오씨는 큰 기쁨이자 자랑거리다. 보통 평신도 선교사가 머무는 기간은 약 2년이지만 오씨가 금당공소에 머문 것은 벌써 5년째가 됐다. 워낙 열악한 조건의 공소라 찾아오는 이가 없어 처음부터 5년 계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금당공소 신자들은 오씨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권변두(요셉·77·금당공소)씨는 “선교사님이 와서 공소가 활발하고 좋은 분위기가 됐다”면서 “이렇게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공소를 이끌어주시는 선교사님이 못 떠나게 잡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정심씨가 공소를 위해 헌신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50년 이상을 살아온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떠나와 고향과는 또 다른 정서를 가진 섬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공소 빚을 갚기 위해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둔 아픔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로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오씨는 삶을 통해 부활을 느꼈다.
오씨의 삶에 부활이 돋은 것은 1990년이었다. 그 당시 오씨의 가정은 파국에 치닫고 있었다. 남편이 방탕한 생활로 가정을 멀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혼 이야기가 나오던 순간 남편이 회심하고 돌아섰다. 이들 부부는 그것이 기도의 힘이었음에 의심치 않는다. 아무런 본당 활동 없이 미사만 챙기는 신자였던 오씨였지만 남편을 위해 늘 남편의 등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해왔던 것이다. 회심한 남편은 오씨의 권유로 세례를 받아 함께 신앙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씨의 신앙도 깊어져 평신도 선교사 교육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오정심씨의 남편 오한영(요한보스코·72)씨는 오정심씨의 가장 든든한 협력자다. 아내가 평신도 선교사로서 선교를 위해 공소로 떠나겠다는 결심에 흔쾌히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 금당공소를 찾은 오한영씨는 선교사인 아내만큼이나 열정을 다해 공소를 돌봤다. 오정심씨가 가장 깊은 고민, 어려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는 오한영씨뿐이다. 그리고 공소의 조경, 청소, 정리 등 온갖 잡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신자들을 만나는 일 하나하나를 돕고 있다. 그리고 올해부터 시작한 청소년·청년을 위한 영어성경공부반, 릴레이성경쓰기도 오한영씨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이다.
부활은 그치지 않았다. 오정심씨의 삶에서 돋은 부활은 공소의 부활로 이어졌고 그 부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 금당공소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을 보면서 말씀이 이뤄짐을 체험한 오정심씨도 많은 것을 배웠다. 그에겐 공소에서의 하루하루가 모두 부활이다.
“전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았을 때 화도 나고 힘들었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걸 믿고 살아가면서 마음에 어두움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나가고 있어요. 공소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에서 날마다 부활하고 있는 거예요.”
▲ 금당공소.
▲ 오정심씨가 공소건축기금마련을 위한 미역을 포장하고 있다.
▲ 오한영 오정심씨 부부.
▲ 매일 해가 떠오르듯 금당공소의 하루하루도 모두 부활이다. 금당도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