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에 사는 최주화(글라라·33)씨는 2008년 6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두 번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최씨는 2008년 12월 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해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모두가 절망적이라고 얘기할 때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최씨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최씨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
2007년 9월, 최씨는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 과정에서 몸이 예전 같지 않게 자주 피곤해지고 열이 나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감기몸살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계속되는 두통과 고열로 최씨의 상태는 점차 나빠졌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봤지만 분명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을 보냈고, 결국 최씨는 서울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골수검사를 받고서야 자신의 병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분노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는 달리 최씨는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부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하느님께서 당연히 병을 고쳐주실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죠.” 하지만 같은 병실에서 함께 의지하며 항암치료를 받던 동료 환자들이 하나 둘 좋지 않은 결과로 최씨 곁을 떠나자 그제야 실감이 나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삶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최씨는 두 아이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생각했죠. 아이들 때문에라도 반드시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최씨가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써 두 번에 걸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가족들 또한 고통을 분담하며 함께 시련을 이겨나갔다. 최씨의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쇠약해진 딸 곁에서 쉼 없이 묵주 알을 굴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간호에 매달렸고, 남편 현영훈(루치오·36)씨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최씨를 간호하는 한편 빠듯해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여 기존의 직업과 병행하기 시작했다. 최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제주교구 광양본당(주임 김창훈 신부) 신자들은 기도로써 최씨를 응원했다.
▲ 최주화씨가 두 아들과 함께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 이름 모를 천사가 퍼트린 ‘사랑’의 씨앗
이러한 주위의 애절한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최씨에게 꼭 맞는 조혈모세포 공여자가 나타났다. 현재까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완치되기 위해서는 조혈모세포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적합성항원(HLA)이라는 유전자형이 일치해야만 가능한데, 두 사람의 HLA 형이 일치할 가능성은 친형제자매의 경우 25%다. 하지만 무남독녀인 최씨의 경우, 타인의 HLA 형과 일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그 확률은 수천에서 수만분의 1확률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아진다.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의 기도가 하느님께 닿아 그분이 제 손을 놓지 않는다고 느꼈죠.”
비혈연간 조혈모세포이식이 이뤄지면 법적으로 환자와 기증자 간의 인적정보는 비밀로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직접 대면할 수도 없다. 최씨는 기증자를 ‘이름 모를 천사님’이라고 부르며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표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저를 위해 기꺼이 이식을 허락해줬기에 지금 제가 두 아이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항상 감사하고 또 존경합니다.” 또 최씨의 남편도 이번 일을 계기로 조혈모세포기증희망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번 기사를 통해 제가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 사랑으로 다시 뭉친 가족
최씨가 투병 당시 꿈꿨던 소망은 오로지 하나,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사는 것이었다. “과연 언제쯤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했죠.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제가 곁에 있어 주지 못했잖아요. 그 점이 항상 미안하죠.” 최씨는 이식 수술을 받은 후에도 건강이 괜찮아 질 때까지 아이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시댁에서, 최씨는 친정부모와 함께 살며 생이별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열심히 했어요.”
2010년 7월에서야 그토록 바라던 최씨의 바람은 이뤄져 다시 함께 살게 됐다. 그동안 엄마의 빈자리가 그리워서였을까. 아이들은 인터뷰 내내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개구쟁이 남자아이 둘이 장난감을 갖고 티격태격 다투고 온 집안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지만, 최씨는 그런 아이들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기쁨이지요.” 한참을 뛰어놀던 큰아들 원주(안드레아·7)를 붙잡고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퍼져나가는 복음으로 우리가 기쁨과 희망을 얻는 것처럼 최씨가 받은 사랑이 끝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부활을 맞이하는 최씨의 마음가짐은 어떨지 궁금했다. “모든 것에 감사했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제 두 번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 열심히 고민하며 살 겁니다. 투병은 어찌 보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은 전환점인 셈이죠.”
▲ 최주화씨는 올 1월부터 성경필사를 시작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던 최주화씨는 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