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대답하여 「안된다.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한테 가서 너희 것을 사라」라고 말했습니다』(마태 25,9)
나는 얼마전에 감동적인 짧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짓고 고민하다가 한 수도원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죄의 고해를 들은 고해신부는 그에게 감동적인 훈계를 했습니다. 이어서 사죄경을 외우며 죄를 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안히 물러가시라고 했습니다. 고해자는 자기가 무슨 보속을 해야할지 물었습니다. 고해자는 신부가 보속 주는 것을 잊어버린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의 대답은 『보속은 내가 합니다. 그러니 형제는 그냥 물러가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짧은 글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왜 충실히 수도생활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의 죄를 대신지고 보속하며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는 자신이 죄짓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의 죄를 외면할 수 없으며 하느님 앞에서 세상과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하므로, 기도하지 않는 세상을 대신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절제가 부족한 세상을 위하여 독신으로 살면서 열심히 재를 지키고 보속을 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눈다는 것은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과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나눈다는 것은 나에게 필요없는 남는 것을 처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필요한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만큼 나에게 불편함이 생기고 따라서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눔이라야 참으로 가치있는 나눔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복음에서 슬기로운 처녀들의 처사가 불만스럽습니다. 내가 만일 오늘 복음을 다시 쓴다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그때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불을 챙기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너희 기름을 우리에게 나누어 다오. 우리 등불이 꺼져 간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래 절반씩 나누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기름이 모자랄지 모르니 우리가 얼른 가서 기름을 더 사올께. 그동안 너희는 우리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좀 지키고 있거라.」 그들이 기름을 사러나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신랑은 기다리던 처녀들에게 왜 등불을 둘씩 들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신랑은 기름을 사러간 처녀들을 기다려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으시오. 여러분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만 깨어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형제와 함께 깨어 있도록 서로 격려하십시오.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형제들을 소외시키지 말고 여러분이 한 형제임을 생각하고 그 형제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혼인잔치의 열 처녀들은 아마도 신부의 친구 들러리인 듯 합니다. 이들은 친구의 결혼식 때마다 들러리를 서면서 매번 기름을 빠트리고 와서 친구들의 입장을 거북하게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슬기로운 처녀들이 단합하여 어리석은 들러리들의 버릇을 고쳐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본문에「이날 이후 어리석은 처녀들도 한번도 기름을 빠트리는 일이 없었다」고 삽입하고 싶어집니다. 어리석은 친구를 충고하고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형제를 위하여 해야 할 의무입니다. 형제의 계속되는 잘못을 보고도 평화를 위하여 계속 못 본체하고 제 할일만 하는 사람 역시 「제 등잔에 기름을 채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형제의 어리석음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만이 형제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형제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만큼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슬기로운 처녀들은 전에 하던 대로 기름은 넉넉히 준비해온 듯 합니다. 그러나 마음 아프지만 형제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하여 그렇게 했기 때문에 신랑도 그들에게 동조했나 봅니다. 결국은 누구나 제 등불의 기름은 자기가 채워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