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7월, 신유박해가 다시 한 고비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순교자들의 명부는 그 아름다운 이름들로 계속 메꾸어져 갔다. 6월에 주춤했던 처형 또한 7월에 들면서 다시 기세를 올리기 시작하였으며, 서울의 신자들이 체포되는 것을 기화로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다시 순교자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때 김광옥(金廣玉ㆍ안드레아)과 김정득(金丁得ㆍ베드로)이 함께 숨어지내면서 생활하다가 체포되어 나란히 그 명부에 올라가게 되었다.
김광옥(안드레아)은 내포 지방의 예산(禮山) 여사울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면장(面長)을 지낸 사람이었다. 여사울은 곧 여촌(餘村)으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의 고향이며, 안드레아 또한 이웃에 살던 그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두려움없이 교리 실천
이후 그는 외교인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나게 교리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는 한편 이를 가족과 이웃에게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사순절에는 금식재를 지키며 여러가지로 극기 행위를 하였고, 언제나 천주교의 덕행을 닦는 데 노력함으로써 어린 양과 같이 순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친척인 김정득(베드로)은 일명「대춘」이라고도 불렸는데, 예산에서 멀지 않은 대흥(大興) 고을 출신이었다. 어는 기록에는 공주가 고향이었다고도 한다. 안드레아로부터 교리를 배운 그는 마찬가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웃에게 그 교리를 전하였으므로 오래지 아니하여 외교인들 사이에 이름이 나게 되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들은 함께 박해자들의 탄압을 피하고 신앙을 지켜나갈 목적으로 성물과 서적만을 지닌채 산곡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곳은 공주의 사곡, 우성, 정안면 사이에 있는 무성산으로 사나운 짐승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들은 상관없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오로지 교리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미 둘의 이름이 외교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있던 터였으므로 뒤를 따라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안드레아는 예산으로, 베드로는 홍주로 압송되고 말았다.
체포되자 얼굴에 기쁨 가득
형벌과 문초를 받는 가운데 보여 준 안드레아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였다. 본래부터 순교를 각오하고 있던 그는 체포되자마자 얼굴이 천상의 기쁨으로 넘쳐 흘렀고, 천주교인과 교회서적이 있는 곳을 대라는 관장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치도곤을 으스러지도록 맞으면서도 오직 대군 대부(大君大父)이신 하느님을 버릴 수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 현장을 볼 수 있었던 신자와 포졸들은 한결같이 『임금과 부모를 대할 때면 혹 마음에 있는 감정과 밖에 드러나는 행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천주께서는 모든 비밀스런 감정과 의향을 보고 계시므로 마음속으로라도 다른뜻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사실을 전하였다.
형벌 가운데서 보여 준 베드로의 마음 또한 안드레아와 같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함께 병사(兵使)가 주재하던 청주로 이송되어 다시 문초를 받고는 서울로 이송되었으며, 포도청을 거쳐 형조로 옮겨진 뒤 8월 21일(음력7월13일)에 사형판결을 받게 되었다.
참수 길에 서로를 격려
당시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들은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말로 이를 대신했다고 한다. 판결문에는 또 그들을 고향으로 내려보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처형하도록 결정하였다. 이에 그들은 함께 오랏줄에 묶인 채 길을 떠났고, 길을 가는 동안 서로를 격려하다가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참수를 당한 이튿날 정오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실로 그 인사는 아주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묵주기도로 처형 지연
마침내 8월 25일, 안드레아는 예산에서, 베드로는 대흥 읍내에서 각각 참수되어 순교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 형장으로 가던 안드레아는 큰소리로 묵주 신공을 드렸는데, 형장에 이르러서도 기도를 마치지 못하자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뒤, 기도가 끝나자마자 나무토막을 집어다 자신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첫 칼질이 잘못되어 어깨만을 스치게 되자 몸을 일으켜 피를 닦고는 『조심해서 머리를 단번에 자르도록 하게』라고 망나니에게 말한 뒤 영광된 제사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는 칼날을 받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