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오보에의 선율이 퍼져나올 것 같은 늦가을 오후에 어느 신부님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단풍잎들이 조용히 떨어지고 있는 나무아래서 시(詩)를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또 다른 여유로운 시화(詩畵)였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혹은 「할 일이 많아서…」라는 말이 일상의 인사가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일신드롬」 「활동신드롬」에 전염되어 일어나는 시간부터 잠자는 시간까지 일에 대한 계획을 촘촘히 세운다. 걸을 걸으면서 차를 몰고 가면서 전화를 하는 모습에는 일과 계획에 묻힌 여유없는 표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청년은 자기방의 벽에다 평생동안 할 일에 대해 계획표를 걸어 두고 있는데, 그 곳에는 여유란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 생을 언제 마칠 것이라는 계획까지 세워둔 소위 장래가 촉망되는 이 청년에게 여유란 어떻게 이해될까.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안증세로 몰고 간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여유를 가지면 어른들은 불안을 느끼고 「미래」라는 이름의 카드를 내보이며 그들의 여유와 시간을 몰수하고 그들의 시간계획을 대신 세워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풍조속에 여유는 자칫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무능한 사람들의 허세나 위안처럼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여유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상태가 아니며 더구나 하루의 일과표에 끼워 넣어 계획적으로 누리는 강좌 참여식의 차원도 아니다. 여유는 언제 어디서나 찾을 수 있고 발견되어 질 수 있는 깨어 있는 주체적인 정신활동이며 지혜의 길을 찾는 자세라는 생각을 한다.
일중독에 빠졌거나 권태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보기를 회피하는 반면 여유를 가진 사람은 바라볼 수 있고 귀기울일 수 있으며 느끼고 감동할 줄 안다. 여유있는 사람은 향기를 지니고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가을 숲에 가는 것은 단풍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색깔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닐까. 자연과 예술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질 시간을 선사한다. 그네를 타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박하고 명륜하게 가르친다.
시를 만나러 갔다가 시인이 되어 돌아오고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고 싶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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