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머니께서 갑자기 치맛자락을 주섬주섬 걷어 올리시더니 속곳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 주셨다. 들여다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아니 ‘거지 할머니’가 어디서 돈이 생겼냐고 묻자, 마리아 할머니는 울먹이며 생전 얼굴조차 보이지 않던 아들이 갑자기 찾아왔고 용돈까지 주고 갔다고 답했다.
얼마 뒤, 마리아 할머니는 미사 후에 또다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놓았다.
“신부님, 성당 건립 기금입니다.”
뒤이어 할머니는 아들 집에 다녀왔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구걸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할머니 일상의 변화는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매 주일마다 담배 한 갑을 내게 쥐어 주셨다. 안 받겠다 사양하자 억지로 내 수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 할머니가 주신 담배가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 주일 내내 담배를 속곳에 넣어 보관해 잠자는 사이에 짓눌렸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아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가장 먼저 헌금과 교무금, 성당 건립기금으로 나누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담뱃값도 미리 빼서 담배를 사두었다고 한다. 마침 집에 온 아들이 그 담배를 보곤 어머니가 자신에게 주는 것인 줄 알고 가져가는 바람에 할머니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이후부터는 담배를 속곳에 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담배를 한 대 물었더니, 정말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사목위원들에게도 한 개비씩 나누어 주었더니 모두들 맛있는 담배라고 응답했다. 아마도 할머니의 꾸밈없는 사랑이 가득 담겼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미사 후 담배를 피우게 되면, 그 옛날 치마를 걷어 올려 속곳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주시던 마리아 할머니가 생각나곤 했다. 한 끼 한 끼 걱정하며 구걸을 했던 할머니가 이젠 신부에게 담배도 사주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지금도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그때 일을 떠올리면 담배연기가 더욱 향기롭게 다가온다.
(마리아할머니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