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라는 특수한 집단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거리에 있기 때문에 종교단체들이 온통 먹거리로 병사들을 모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워낙 벽촌이다 보니 후원자도 도우미도 없어 미사에 나오는 기간병과 환자병 식사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조건 가까운 본당에 찾아가 봉사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비교적 병세가 호전된 환자병과 함께 준비한다. 도움을 청하면 우리 환자병들은 기쁘게 잘 도와준다. 기간병은 식후 설거지, 방 청소, 화장실 청소 등을 담당하는데 식사를 마치면 구역을 맡아 기쁘게 잘 도와준다.

미사 시간이 식사 시간과 겹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병사들 밥을 하게 되고 처음엔 분량도 잘 맞추지 못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나, 이젠 안성맞춤이 되었다고나 할까. 맛있게 먹으면서 이제는 남자들도 식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는 진지한 병사들도 있다.

병사들 덕분에 오래전에 조리사자격증 딸 때 노트를 들춰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호전된 환자병과 실습한다. 가끔은 해물칼국수를 하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소주병으로 밀기도 하고, 김치만두를 빚으며 힘 좋은 병사에게 꾹 짜라고 해 만두도 찌고 떡볶이도 했더니 한 병사가 “수녀님, 우리 동네 소문난 분식점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맛있어요. 분식점 차리면 돈 많이 벌겠어요” 하며 힘을 실어 주기도 한다. 때론 힘도 들고 어려움도 있지만, 이런 젊은이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맺음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지난 성탄 때는 갈비찜을 해 주었더니, 군대 와서 이런 음식을 먹어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행복해하며 맛나게 먹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행복은 두 배가 된다. 부모가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자녀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 했던가!? 나 역시 병사들이 맛있게 먹고 “더 없어요?”하며 빈 그릇 내밀 때가 가장 예쁘다.

전역한 이들이 특별한 일이 생기면 전화해서 소식을 알리고, 내가 궁금해 전화 이메일, 문자 등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데 며칠 전에는 약대생이던 전역자가 군에서 세 번씩이나 수술을 했어도 잘 움직이지 않던 발목이 밖에 나가 수술이 잘 되어 다 나았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자기가 군의관이 되어 자기 같은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평생 군의관으로 지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공부중이라고 해서 한참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있기도 했다.

후줄근한 환자복을 벗고 퇴원해 자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서 인사차 들릴 때면 씩씩한 모습에서 희망찬 미래가 엿보여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어딜 가든 예수님과 동행할 것을 당부한다.

대축일 미사에는 종교행사로 병사들이 밤에 외출이 허용되는데 부활, 성탄 대축일 전야에는 상무대성당에 데리고 간다. 비신자도 친구 따라 나서는데 두 가지 지향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외출 자체가 좋아서이고 하나는 선물과 함께 2부 행사로 맛난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올 성탄 때도 역시 처음 온 병사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부님이 “평소에 안보이던 병사들이 많은데….” 하고 시작하려 하니 일제히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재치있게 말문을 막아버린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든지 이럴 땐 웃음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