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여년의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필리핀인들에게 성탄절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이웃 친지들과 함께 아기 예수의 강생을 기뻐하고 서로 평화와 축복을 기원해 주는 시기가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필리핀에서의 대림절과 성탄절 준비는 9월에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9월이 되면 거리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0~11월안에 성탄장식을 모두 끝낸다. 새옷을 준비하기도 하고 수리가 필요한 집은 이 시기에 손을 본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각 학교들은 3주정도의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도시에 나와 공부를 하는 이들이나 객지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은 흡사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연휴 때 볼 수 있는 차표구하기 전쟁을 벌인다.
◆ 9월부터 거리엔 캐롤이
필리핀인들이 지내는 큰 명절은 부활절 성탄절 본당 주보축일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탄절은 전 국민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특별한 명절이다.
특히 성탄절 9일기도는 필리핀 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생활 풍속을 잘 조화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2월16일부터 성탄절까지 각 성당에서는 새벽 9일미사를 봉헌한다. 이 9일기도는 보통 새벽 4시30분에 거행되며 신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참례 후 이들은 성당에서 이웃과 함께 혹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부터」「비빙카」「버드버드」라는 명절 음식과 커피 초코렛등으로 아침식사를 나눈다. 이것은 쌀이나 찹쌀로 둥근 팬케이크처럼 만들어 지는데 코코넛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일종의 쌀케이크라고 할수 있다.
◆ 이웃ㆍ가족과 음식 나눔
또 사람들은 집집마다 구유를 만들고 성탄별을 만드는 등 집안팎을 장식한다. 성당이나 마을에서는 성탄별 만들기 대회나 크리스마스 캐롤 부르기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성당마당에서는 젊은이들의 디스코파티가 벌어지는 등 축제 분위기가 절정을 이룬다. 이때는 평소 성당에 나오지 않던 이들도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당은 평소보다 더 많은 신자들로 넘쳐난다.
◆ 자선활동도 활발
가족 회사 학교등 단위별로 또한 파티를 준비하고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도 성탄시기에 볼 수 있다. 단체나 본당에서는 집집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기금을 모으는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수원교구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목을 하고 있는 유진 신부(필리핀인ㆍ신언회)는 『크리스마스를 잘 지내기 위해 1년동안 저축을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성탄절은 필리핀인들에게 큰 명절』이라면서 『가족들끼리의 유대가 강조되는 시기라서 한국식의 「종친회」같은 가족행사가 열리기도 한다』고 들려줬다.
◆ 2만명 한국 근로자 향수
『한국인들이 추석명절 때 고향을 생각하듯이 필리핀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곧 고향과 가족 친척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시기』라고 강조한 유진 신부는 『그런면에서 한국에서 일하는 2만여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은 한편 성탄시기가 더욱 힘들고 외로운 시간일 수 있다』고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한 필리핀 성당에서 성탄 자정미사 후 전통춤을 추며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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