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장익 주교 (춘천교구장)
②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
➌ 박석희 주교(안동교구장)
④ 최창무 주교(서울 사회사목 담당)
◆ 모순투성이의 사회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인간의 사고와 원의와 행동에는 없어서는 안될 출발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순의 원리」라고 했다. 『한 사물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 안할 수 없다』라는 것이 모순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너무나 단순하고 보편적이며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도 이 원리를 적용한다.
이 모순의 원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아는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고, 진리와 오류를,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된다. 어린이들도 자기 아버지와 이웃집 아저씨를 구별한다. 그러나 만일 정말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남편이 자기 아내와 다른 여자를 혼동하고, 아내가 자기 남편과 다른 남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며 이것은 모순이고,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고 악이 된다.
오늘날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는 그 밑에는 진리를 망각한 모순된 인간이 있다. 「하나」와 「다수」를 혼동하여 개인을 전체에 환원시키는 전체주의와 반대로 다수의 사람을 개인에 환원시키는 개인주의, 인간을 물질에 환원시키는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인간과 자연을 혼동하는 자연주의, 인간 행복을 오직 성적 본능에로만 귀결시키는 쾌락주의, 피조물과 창조주를 혼동하는 무신론 및 반신론 등은 모두 그 자체로 모순된 것들이고 진리가 아니다.
모순의 원리가 없으면 피조물들안에 있는 서열도 모르게 된다.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을 자연과 혼동하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행세를 하려한다. 따라서 가치의 서열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인류 역사 초기부터 성현들은 인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란 진리요 도(道)이며, 다음이 도덕적 삶이고, 마지막으로 가장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을 만드는 기술이나 사람을 다루는 기술인 정치 및 권력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현대는 기술이 없으면 살아날 수 없다고 가르치고, 권력을 갖는 것이 곧 선이고 진리인 것처럼 권력 추구의 사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명상보다는 활동을 더 찬양하고, 존재보다는 행동 또는 소유를, 직관보다는 사실을, 복된 만족보다는 성공을, 양육시키기보다는 정복을, 일생을 두고 투신하기보다는 빠른 시일 내에 자리잡기를. 어머니로서의 여인보다는 부정한 여인을 더 찬양한다. 모순 투성이의 사회이다
◆ 진리의 증거
2천년 전 로마제국의 변방 유다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총독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넘겨준 죄수를 심문하고 있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총독의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은 대로마 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는 반체제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왔다』그러나 총독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되물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재판관인 그가 죄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총독은 로마법에 따라 피고인을 재판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지 「진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은 물론 자기 삶이 진리에 근거하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살다가 역습을 당하였다.
재판하는 일 만이 아니라 정치ㆍ경제활동ㆍ문화와 종교생활 모두가 진리에 근거를 둘 때에 바로 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양심의 존엄성도 진리로부터 온다. 양심의 자유는 진리에서 벗어난 자유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다. 인간 윤리 행위도 진리에 근거할 때에 선이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진리의 광채」라는 회칙에서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앞에서 본 모순의 원리에 따르면 「훔친 것」은 「훔친 것」이지 「훔친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훔친 것」을 배곯은 사람에게 주었다 해도 그렇다. 『선을 드러내기 위해 악을 향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행위가 내적으로 악하면 올바른 지향이나 특별한 상황은 그 악을 줄일 수는 있으나 없앨 수는 없습니다. 상황이나 지향은 결코 그 대상 때문에 내적으로 악한 행위들, 「주관적으로」선한 행위 또는 선택가능한 행위로 바꿀 수 없습니다』(진리의 광채 79,80). 윤리 도덕의 객관적 기준은 진리이지 상황도 아니고 더구나 주관적인 감정도 아니고 『자기 좋을 대로하는 자유』도 아니다. 오늘 날의 혼란은 진리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 대희년과 제삼천년기를 살아갈 우리의 지표는 『진리를 증거』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당신이 곧 진리라고 하셨다(요한 14,6참조). 진리는 추상적인 이론도 아니요 그렇다고 나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와 꼭 같은 (죄 외에는) 삶을 사신「인격」(Persona)이다. 우리는 진리이신 말씀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도덕적 규범은 우리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의 빛으로서 우리 안에 감추어진 우리의 참 모습인 하느님 모상을 들어냄으로써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이신 분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진리의 힘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리를 위한 그 분의 증거는 십자가 사랑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대표적 가치는 「정의」였으나 21세기의 대표적 가치는 이 사랑에 의한 「포괄」또는 「포용」이며 「통합의 정신」이 될 것이다. 사랑에 의한 포괄에는 타 종교인은 물론 모든 비신자 및 외국인 등 차별없이 모두 하나가 될 것이다. 사랑에 의한 포괄의 정신으로 가정과 본당 및 남북 문제도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랑의 힘을 신뢰해야 한다. 하느님은 진리이시기에 그분의 사랑도 진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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