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어린이들을 위한 초등교육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난민 중에서 교사를 선발하여 기초교육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시킬 여건은 되지 못한 실정이었다.
난민촌에는 60%가 청소년 어린이들로 이들 모두에게 합당한 정규교육을 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보였다.
그래도 청소년을 위한 여러 교육 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컨대 청소년간의 만남주선, 교양교육, 외국어교육, 보건의료교육, 카드 만들기, 수놓기 등이다.
성인들 교육도 있었는데 옷수선, 옷만들기, 대장간에서 간단한 용구제작, 제빵, 이발 기술교육 등 다양한 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에는 보지 못한 교육들이었다. 여성들을 위한 여려 교육 과정도 실시되고 있었는데 특별히 근래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교육도 강화되었다고 한다.
난민들의 여가와 축제를 위하여 전통춤을 추는 무용단의 공연도 이채로웠다. 현지 난민의 70% 가량이 가톨릭 신자이기에 간이천막 성당도 마련되었고 마침 방문한 때가 모든 성인 날 대축일이어서 감동적인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작년 방문시에는 일체의 종교 행사가 난민 소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는데 놀라운 변화였다.
난민촌 외부와 내부에는 커다란 장이 서서 활발한 상거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무료한 난민촌 생활로 폭력과 절도같은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난민촌 안에는 청소년을 위한 넓직한 운동장 하나만이 유일한 여가선용 시설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재 이 난민촌은 약 2백여명의 까리따스 요원이 4만5천명의 난민을 돌보고 있는데 이는 턱없이 모자라는 인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으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현재 난민촌에는 인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이 제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은 절대 아니다. 초기보다는 모든 것이 나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입에 맞지않는 식량의 배급, 수준 미달의 최소한의 의료, 열악한 위생환경, 물 부족으로 인한 세탁과 목욕의 기회 전무, 밤이 되면 다가오는 참을 수 없는 추위, 식사 준비를 위한 땔감 부족, 최소한의 교육, 무료한 난민생활을 달랠 수 있는 방안 부재 등등은 아직도 비참한 난민생활임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다. UNHCR은 이런 상태로 난민생활이 장기화 되고 있는데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현지 UNHCR책임자는 난민들의 조속한 본국 귀환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보고 있었다.
이는 또한 UNHCR의 기본 정책이기도 하였다. 전 세계의 난민들을 위하여 UN은 매일 미화 2백만불을 지출하고 있는데 이를 지속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한다. 르완다 난민들의 본국귀환을 위하여 르완다 정부와 계속 협상을 하고 있으나 문제는 이들 난민들이 본국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르완다 정부가 학살에 가담하지 않은 난민들의 귀환 시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언명을 하면서도 학살자에 대한 색출과 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에 이들 난민은 보복이 두려워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본국에서는 이들의 땅과 재산이 이미 투치족에게 넘어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귀국하더라도 생계를 이어갈 길이 막연하다는 두려움에서도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다른 방법은 현지에서 정착하는 방법인데 탄자니아 정부는 1백여만명에 달하는 이들에게 농토를 나누어 주고 정착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며 난민들과 원주민 사이의 마찰, 화목 채취로 인한 환경 파괴 등으로 이들 난민이 자국 영토에서 나가주기를 완곡하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난민들은 한사코 본국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르완다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속에 갇혀있는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UNHCR은 점차적으로 난민촌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민간단체로 넘기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챠발리사 난민촌의 경우에도 제1 난민촌뿐 아니라 제2난민촌, 또 근래에 신설한 다른 난민촌까지 까리따스가 운영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제 까리따스 역시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금년 11월 현재 국제 까리따스는 금년에 50여 곳에서 발생한 긴급 구호 원조를 각국 까리따스에 호소하고 있다. 금년도 챠발리사 난민촌 운영예산 총액은 약 1백30만불인데 UNHCR이 50만불을 부담하였고 나머지 80만불을 국제 까리따스가 부담하였다.
국제 까리따스 부담액 중 30만불은 한국이, 나머지 50만불은 네덜란드 까리따스를 비롯하여 각국 까리따스가 공동부담을 하였다. 그러나 내년도에도 국제 까리따스가 이만한 부담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챠발리사 난민촌 방문 직전에 자이레 지역 르완다 난민촌을 투치족 무장 게릴라들이 무력 침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신은 전했다.
방문기간 동안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민촌의 공격을 받아 난민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UN기관요원들과 구호기구 요원들이 많은 난민촌에서 철수 하였으며 부카부에서는 중재에 나섰던 주교님이 피살되었다는 미확인 소식도 전해지고 있었다.
다르에스살람에서는 현지를 탈출한 탄자니아 신부님도 만날 수 있었으며 탄자니아 주교회의에서는 주교님들이 이 새로운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이시기로 하였다.
탄나니아 르완다 난민촌 지원조정을 맡은 네덜란드 까리따스 직원으로부터 우리와의 사전 약속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로 급히 오고 있어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 무력 침공에 대하여 자이레 정부는 무력한 입장을 드러냈는데 자이레도 잠정적 내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한번 전 세계는 자이레지역 르완다 난민촌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도저히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탄자니아쪽 르완다 난민촌들은 아직은 평온한 상태는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짧은 시간 동안의 난민촌 방문이었으나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기회였다.
가난한 나라 탄자니아 교회가 나그네가 되어 품안에 뛰어든 외국의 난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다. 1994년 4월 최초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룰렝게 교구에 도착하였을 때 이 교구 무월레커 주교님은 빚을 내어 이들 난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였는데 이 주교님은 아직도 이 빚을 다 갚지 못하셨다고 한다.
전기도 없는 교구청에서 첫번째 방문시 우리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시던 그분이였기에 굶주린 난민들을 외면치 않으셨으리라.
가난한 교구임에도 불구하고 사제와 수도자와 많은 평신도들을 난민촌에 파견하시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이 어두운 터널속에서도 작은 등불로 외국의 난민을 돌보도록 배려하신 그분의 사랑에 조그만 힘이라도 되어드리는 것이 같은 교회의 지체인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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