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장익 주교(춘천교구장)
②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
③ 박석희 주교(안동교구장)
➍ 최창무 주교(서울 사회사목 담당)
◆ 예수님은 우리의 희년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루가복음을 잠시 경청합시다 :『주님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에게 시력을 주고 억눌린 사람들을 놓아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예수께서는『성서의 이 대목은 오늘 여러분이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루가4,16-21)
이 성경 말씀에서 희년의 다음과 같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가) 희년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희년은 새로운 삶의 질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하셨으니 어느 때를 기다려 실천할 일이 아니라「지금」, 「당장」실천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 희년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희년이라면 사람의 기본권리와 존엄성,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본권 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에게 참된 해방과 자유를 보장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참된 자유와 해방은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당신들은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당신들에게 자유를 줄 것입니다』(요한8,31-32)
다)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에는 참된 기쁨과 행복이 있고 이러한 삶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초기 공동체의 모습이 이를 증언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주께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들의 모임이 커갔다』(사도2,43-47).이렇게 우리 교회는 2000년을 자라 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희년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워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말입니다.
◆ 구약 속 희년의 정신
구약은 신약을 잉태하고 낳아 주었으며 신약은 구약을 설명하고 해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희년이시라면 구약의 희년은 새롭게 이해되고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구약에서 희년의 모습을 살펴보며 민족식 과제도 더 뚜렷이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과 친척과 부모의 집에서 불러내시며 새 민족을 만드시고 새로운 고향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 하느님의 약속은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구약은 증언합니다.
에집트에 내려가 고생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위대한 영도자 모세의 지도로 대탈출에 성공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정착하게 될 때 지도자 여호수아는 각 지파들에게 토지를 공정하게 배분하였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 기초이며 원칙이었습니다(여호수아 13-21장).
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이고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하느님의 이 특별한 은혜를 저버렸고 스스로 불행한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자유도 축복의 땅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질서와 평화는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다시 찾아 얻게 되며 이것이 곧 희년의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즉 잃었던 땅을 되찾고 빚은 탕감받으며 억눌림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으라는 하느님의 분부가 계십니다. 이 하느님의 명령은 일정한 시기 곧 50년째가 되는 대희년에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정신으로 살라고 가르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을 때 예언자들은 동족상잔은 하지 말라고 남북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타이르며 화해와 용서 관용과 포로석방을 명하였습니다(1열왕12,21-24).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떠돌이를 돌보며 억울하게 묶인이를 풀어주고 압제받는 이를 석방하는 일 등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온갖 경신례도 헛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이사야58,1-14). 그래서 능력있는 사람은 늘 이웃을 돌볼 의무를 지며 친척의 빚을 갚아 줄 책임도 있음을 강조합니다(레위25,25-43참조).
이 모든 것은 사람도 땅도 다 하느님 것이므로 하느님께만 예속되고 세상의 누구도 절대 소유주로 군림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과제
예수 그리스도는 참 구세주시며 우리의 평화(에페2,14)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 때 우리 안에 대희년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는 개인과 민족적 차원의 숙제이며 동시에 은총으로서의 초대가 될 것입니다.
가)대희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죄악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죄악은 무질서를 야기하며 혼란과 불행을 가져옵니다.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죄의 구조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사회적 관심36). 그러면 연대의식이 살아날 것이며 사회 비리들도 하나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대희년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눔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빼앗지 말 뿐 아니라 자기 것을 이웃과 나누고, 자기것을 사용할 때도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동족 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하여도 진정한 존경심과 우의를 지녀야 인간의 존엄성은 살아납니다.
다)대희년은 평화공존의 은혜를 나타내는 해를 말합니다. 민족의 분단과 상호불신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참된 희년은 없을 것입니다.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족 간의 나눔과 교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개인의 차원이나 단체나 국가적 차원에서 획기적 결단이 요청됩니다.
구약에 보면 대희년은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는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평화공존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딩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야11,6). 그 때『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으리라』(이사야2,4)
이러한 희년이 우리에게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이 세상을 위임받은 우리 인간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구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이 와도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묵은 우리, 변화되지 않은 우리가 2000년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가 바라고 보람된 희년을 선사받고 싶으면 우리가「지금」그리고「당장」변하고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다 함께 다짐합시다.
1.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자연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일을 중지함으로써 창조질서 보전에 앞장섭시다.
2.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이거나 이기심을 버립시다. 내 주면에서부터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3.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신성함을 저해하는 온갖 제도와 법을 거부하고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 나섭시다.
4. 반세기 이상을 남북이 갈라져 싸우고 미워한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고 그 표지로 양식 나눔에 동참합시다.
5.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돌봄으로써 인류애를 고취시키며 따뜻하고 넉넉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찾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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