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말씀과 복음은 인간의 이해와 한계를 벗어나신 하느님 사랑을 선명히 느끼게 합니다. 특히 루카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부활의 역사적 정황을 뚜렷이 전해 주는데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감동에 들떠 서로의 소감을 말하고 있는 장면을 쉬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오신 주님을 뵙고서는 마치 유령을 대하듯 “무섭고 두려워” 벌벌 떨었다니, 인간의 얄팍한 앎이 믿음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오셨을지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기쁜 축하인사를 받을 기대감에 마음이 설 을 듯도 합니다. 이때문에 유령을 본 듯 놀라는 제자들의 모습이 민망해서 “왜 놀라느냐?”고 반문한 것이라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은 미사에는 참례하지만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몸을 모시지만 그분의 은혜를 모르는 일명 ‘발바닥 신자’들까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결의를 일깨워주는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우리에게 굳은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굳이 당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유령은 몸이 없지 않느냐며 네댓 살 아이를 가르치듯 설명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에 아버지의 뜻이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시’ 초보적인 신앙교육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질긴 사랑을 만납니다. 몇 번이나 발현하시어 부활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음에도 그저 자기네끼리 둘러앉아서 ‘나도 봤다’느니 ‘나도 만났다’느니 하며 복음을 감상하고 있는 우리를 향한 일침이라 헤아립니다.
주님께서 느닷없이 “먹을 것”을 찾으신 모습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느라 진이 빠져 허기를 느끼셨던 것이라 짚어봅니다. “물고기 한 토막”으로 기력을 회복하시어 마침내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고 어림하니, 마음이 저려옵니다. 우리의 모자란 믿음이 그분을 목마르게 하고 지치게 하며 허기지게 한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이 평화는 주님께서 채찍을 맞으심으로, 가시관을 쓰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손발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선물된 하늘의 것입니다.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고 어느 누구에게 빼앗길 수도 없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십자가의 상흔이 뚜렷한 그분의 손과 발은 세상을 이기는 평화의 표상입니다. 축복과 위로의 방패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솟아난 참 평화만이 승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힘을 줍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은 아직 내 뜻대로 그분을 이끌기 위해서 온 힘으로 그분과 힘겨루기를 하는 까닭입니다. 주님의 뜻보다 앞서서 과속으로 판단하고 황망히 내달린 탓입니다.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믿지 않고 오래 참으심을 갑갑하다 여기는 증거입니다. 이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한 사실을 의심하는 모습입니다. 그분께서 주신 “참 평화”를 잃은 삶의 자태입니다. 한마디로 불신의 표지입니다.
부활은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되는 신비를 선물합니다. 내 안에 모신 주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을 대변하게 되고 함께 계신 그분께서 원하는 삶을 살아내도록 합니다. 부활인의 의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일이 결코 힘겹지 않을 이유입니다.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예레 23,24) 계신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온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충성도를 높이도록, 사랑의 실적을 쌓도록 지금도 ‘업그레이드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자녀들을 일일이 챙겨 가르치느라 지친 그분께 ‘물고기 한 토막’을 내어드려 그분의 기운을 북돋워드리면 좋겠습니다. 꼭 이루어질 그분의 뜻을 앞당기는 탄탄한 동아줄 기도를 바치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여 우리 모두가 성령의 불쏘시개가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당신 아들을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삼으실 계획을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하여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주신 그분의 사랑을 소리 높여 찬미할 뿐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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