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국회의원 299명의 종교를 보면, 개신교 신자는 118명(39.5%), 가톨릭 신자는 79명(26.4%)으로 두 그리스도교 종교를 합치면 모두 65.9%에 이른다. 더구나 대통령도 개신교의 장로이고 그가 다녔던 특정 교회의 인물들이 국가의 주요 보직을 맡아왔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와 입법 활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동안 벌어진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공권력의 남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 등으로 국민들은 대부분 절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원 의식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가톨릭 신자는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접는 것이 좋다. 2008년 5월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난자 매매를 허용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가톨릭교회는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벌였고, 몇몇 가톨릭 신자 의원들에게는 법사위 논의 단계부터 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애써달라고 요청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개정안은 결국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통과되었다. 이는 진리와 양심보다는 정치적 이익과 대세를 따르는 모습, 혹은 교회 가르침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지난 몇 년간 가톨릭교회는 4대강 사업의 위법성과 환경파괴 등 정부의 여러 정책의 비윤리성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런 사안에 대해 여당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중에 당파적 입장을 떠나서 신앙과 양심에 따르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교회 가르침의 대의에는 동의해도 구체적인 정책 사안이 그것에 부합하는 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들이 권력자에 대한 눈치 보기와 개인적·당파적 이익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정의와 평화라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과 신앙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교회는 정치적 권위를 존중하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정치권력이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창조 질서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의 보증인이 되어야 할 왕이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예언자들의 경고를 받고 결국 그 책임을 져야함을 일러준다. 세속의 권력은 하느님의 법과 질서에 예속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벗어날 때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예수님은 참된 권위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주셨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정치인들은 국민으로부터 위탁 받은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하여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공동선’이란 인간의 기본권을 비롯하여 의식주 등 기초적인 생활, 교육, 의료, 일자리 등 모든 사람들이 더욱 쉽게 자신의 완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생활의 조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사목헌장 26항). 공동선은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의 목표이다. 교회는 “공동선은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이라고 선언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68).
우리는 참으로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며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이제 곧 시작될 19대 국회의 신자 정치인들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들을 격려하고 감시하는 것도 이들을 뽑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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