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비신학생반 기숙사 정원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기숙사생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1-12번지에 위치한 동성고등학교 예비신학생반 기숙사 ‘베리따스(Veritas)’의 경당. 3학년반 ㅂ군은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세면을 마치고 교복 차림으로 자리를 잡았다. 함께 모인 동기들과 후배들이 지도를 맡고 있는 안승태 신부(동성고 예비신학생 담당)와 함께 감실 앞에서 삼종기도와 아침기도를 시작했다. 하루 일과의 문을 여는 시간이다.
베리따스 기숙사는 지난해 8월 15일 예비신학생들의 학습과 생활 편의를 위해 교구에서 마련했다. 학업에 더 집중력이 필요해진 고3 학생들과 집이 멀어 통학이 어려운 2학년 학생 등 총 16명이 생활하고 있다.
ㅂ군은 기도 후 아침식사를 마치고 등굣길을 서둘렀다. 7시 15분에 봉헌되는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학교 성당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8시 수업 시작에 앞서 미사가 봉헌된다. 예비신학생반 학생들을 위한 미사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90명가량의 동기와 후배들이 하루 학교생활을 시작하며 미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은다.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집이 먼 경우 이 미사 봉헌을 위해 새벽 5시 혹은 5시 30분 정도에 일어나 6시경 집을 나서곤 한다. ㅂ군 역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에는 이른 아침 집을 떠나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입학 초기에는 미사 참례하기가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매일의 미사는 ‘하느님께 더욱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피곤함을 잊게 만들어주었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른 학생들이 이 시간에도 공부에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초조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ㅂ군에게 있어 30분 정도의 미사 시간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다잡는 ‘활력소’가 된다. 이제 아침미사는 예비신학생반 생활 중 가장 기다려지는, 보람된 순간이다. 그리고 예비신학생반 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 달라진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다른 친구들 경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사제를 향한 꿈을 더욱 강하게 굳힐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나누곤 한다.
▲ 매일 오전 7시 15분 학교 성당에서 봉헌되는 예비신학생반 학생들의 미사. 하루 일과를 미사로 시작하면서 사제 성소를 향한 꿈을 다진다.
미사가 끝난 뒤 ㅂ군은 정규 수업을 위해 교실에 돌아왔다. 급우는 모두 27명. 이 중 11명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27명의 반 친구들은 모두 1학년 때부터 ‘하나의 꿈’을 위해 함께했다는 면에서 이미 ‘동지’같은 개념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아이들이 함께 모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을 서로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또 의지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좋다. 예비신학생반 생활을 하면서 얻는 참으로 큰 에너지다.
입학 때부터 ‘예비신학생반’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보니 다른 일반 학생들이 ‘미래의 신부님들’이라 부르거나, 무언가 다른 눈길로 보는 등 부담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한 시선 속에서도 ‘사제가 되겠다’는 같은 지향을 급우들과 함께 나눴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각오가 늘 새로울 수 있었다.
ㅂ군이 속한 예비신학생 3학년반은 2010년 동성고등학교에 예비신학생 과정을 처음 시행한 사례여서 3개 학년이 모두 완성되어진 올해는 교구 내외의 관심이 좀 더 특별하다. 무엇보다 3학년의 경우 내년 신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ㅂ군과 26명의 급우들은 예비신학생반 1기인 현 고 3학년 전체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3년 동안 꿈꿔 왔던 그 원의대로 신학교에 함께 입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친구들이 현재 느끼는 공통된 어려운 점은 아마도 공부일 것이다.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는 결국 성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는 까닭이다.
수업을 마친 ㅂ군은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귀갓길에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예전 같았으면 수업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버렸을 텐데, 기숙사 생활을 하니 이런 좋은 점이 있다. 기숙사생들은 학교에 남지 않고 기숙사에서 자율 학습을 한다. 저녁 식사 후 기숙사 2층에 마련된 면학실에서 각자 부족한 과목들을 공부한다.
11시가 되자 공부하던 이들이 한 명 두 명씩 경당에 다시 모였다. 지도신부님과 함께 묵주기도와 저녁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고단했던 하루 일정을 되돌아보고 새날을 준비하는 심정을 성모님께 의탁하는 때이다. 일상이 힘들 때 묵주기도로 다시 마음의 에너지를 얻는 ㅂ군에겐 더없이 편안한 시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비신학생의 기도를 덧붙인다. “저희에게 심어주신 성소의 싹을 올바른 지향으로 계속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길을 항구히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이제 곧 성소주일이다. 사제의 삶을 꿈꾸는 예비신학생들에게 더욱 특별한 주일이 아닐 수 없다. ㅂ군은 성소주일을 맞아 성소를 더 굳건히 하고 또 그 성소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되새겼다. 내년 성소주일은 신학교 교정에서 맞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 동성고등학교 예비신학생반이란?
서울대교구는 2010년 서울 동성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11개 학급중 한 학급(35명)을 예비신학생반으로 운영하는 지침을 결정했다. ‘한국 사제 양성 지침’에 근거, 교구내 사제 성소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예비신학생들을 모아서 사제성소의 밑바탕이 되는 조기 영성 교육을 실시하고 학습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시도였다. 예비신학생반은 각 학년 1학급 35명 기준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현재 1학년 34명 2학년 29명 3학년 27명이 있으며 학업 생활 및 영성지도의 전반적 책임을 맡는 전담 지도신부와 함께 특별히 선임된 담임교사가 학업 및 생활 전반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 예비신학생반 고3 학생 27명이 안승태 지도신부, 담임 노동석 교사와 함께 신학교 입학을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기숙사 면학실에서 공부중인 예비신학생반 기숙사생들.
동성고등학교장 박일 신부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체계적인 사제 성소자의 교육 및 관리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는 시점에서 동성고 예비신학생반의 운영은 사제 성소자의 영성 인성 지적 부분에 대한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교회의 지도와 관심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예비신학생반 운영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