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나무 속살을 조각한 베일이 진짜 베일처럼 너풀거리는 듯하다. 그 나무 베일 안에는 예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모두 눈을 감은 상태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두 눈을 뜰 것만 같은 섬세한 조각이 사로잡은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조각가 허선희(마리넬라)씨의 작품 ‘베일 속의 주’ 시리즈에서 표현되는 예수는 항상 눈을 감고 있다. 감은 두 눈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간단했다. 그는 조각가이자 신앙인으로서 언젠가는 풀어야할 과제라고 밝혔다.
“제가 감히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눈을 뜨고 계신 예수님 모습을 조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주님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정리되지 않는 저의 숙제인 거 같아요. 하지만 주님께서 언젠가는 저에게 두 눈을 조각하게 하실 거라 생각해요.”
작가는 영남대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로마 국립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로마 유학생활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에서의 유학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고 말하는 허씨는 그곳에서 종교를 갖게 됐고, 조각가로서 평생 이어갈 작품관도 결정하게 됐다.
“제 작업과 신앙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요. 작업을 하면서 묵상하고 기도 속에서 작품의 영감이 떠오르니까요.”
작품들은 대부분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베일 속의 주님’을 비롯 2011년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사마리아의 여인’ ‘십자가의 길’ 등 오랜 묵상과 기도 끝에 얻어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부활하신 예수 형상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 성당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많이 뵐 수 있죠. 그 모습을 보면 고통과 죽음, 희생이라는 단어들이 떠올라 저 자신도 힘들어요. 십자가의 의미가 나를 죽여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은 잘 안 되네요.”
‘부활하신 예수’와 관련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이 난항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은행나무 둥치로 예수 부활 형상을 작업할 계획이다. 더불어 지난해 11월 개관한 ‘갤러리in숲’에서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중들과 소통할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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