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베르티니 교황대사의 제안 이후 광주교구장 헨리(Harold W. Henry) 주교는 예수회에게 대신학교 설립에 따른 신학생 교육과 양성을 제의했고, 1959년 1월 21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았다. 1960년에는 광주에 부지 9만 평을 확보해 연건평 2,500평의 학교 시설을 계획했으며, 1961년 광주시 금남로의 한 낡은 목조 건물에 ‘대건신학당’이란 현판을 걸고, 한국교회의 첫 순교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를 주보성인으로 정했다. 6월 2일에는 예수회 박후버(Andrew H. Bachhuber) 신부를 신학교 학장으로 임명했으며, 이후 주교회의는 입학생의 출신지역을 4개 교구(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로 정했다. 다음해인 1962년 3월 7일 대건신학당은 문교부로부터 ‘대건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 인가를 받고 4월 1일 정식으로 개교했다.
■ 1962~1969년, 예수회 위탁 운영시기
설립 첫해인 1962년 학생은 철학과 21명, 라틴어반 22명이었다. 초기에는 광주관구(광주, 전주교구)와 대구관구(대구, 부산, 청주교구), 수도회(예수회, 살레시오회, 프란치스코회) 신학생들이 입학했다. 1964년 7월 ‘학교법인 대건학당’ 설립인가를 신청해 10월 설립 인가되자 초대 이사장으로 헨리 대주교가 취임했다. 1965년 1월 13일 학교명을 ‘대건신학대학’으로 개명했다.
1967년 불우한 소년소녀들을 돕기 위해 신학생들이 직접 야학 ‘이냐시오학원(이후 대건중학교)’을 만들어 첫해 70여 명의 학생들에게 영어와 한문을 매일 한 시간씩 가르쳤다. 1968년 11월 전망 편집부를 발족해 신학 학술지 「전망」을 발간했다. 「전망」은 세계적인 신학자들의 글을 번역 소개해 신학도들로 하여금 최신 철학과 신학의 동향을 익히게 했다.
1968년 예수회 회원들이 전담했던 대건신학대학 운영진에 처음으로 대구대교구 소속 정은규 신부가 교학처장으로 임명됐고, 차츰 대학운영권이 예수회로부터 광주관주와 대구관구 주교단에게 이양된다.
▲ 1968년 대흥사 소풍(토착화 미사 중).
■ 1969~1984년, 관구 연합 신학교 시기
1969년 11월 28일 학교 운영권이 예수회로부터 관구 주교단으로 이양됐고, 개교 이래 처음으로 4명의 사제가 서품됐다. 1970년 1월 부산교구 이경우 신부가 제4대 학장으로 취임했고, 이때부터 방인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교수단이 형성됐다. 또한 군종사목을 활성화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군종장교후보생’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1971년 제주도가 지목구로 설정되고 헨리 대주교가 제주교구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돼, 한공렬 대주교가 광주대교구장으로 부임했다. 1973년 한 대주교의 서거 후 유족들은 고인의 장서 684권을 도서관에 기증했고, 이듬해 서거 1주기를 맞아 유품을 매각해 장학회를 구성했다.
이 시기는 신학생들은 ‘다락방회(광주교도소 방문 및 교리 봉사)’ ‘만나회(직업보도원생들을 위한 봉사)’ ‘아가페회(한센인 마을 및 사회복지시설 방문 봉사)’ 등이 결성돼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했다. 1973년 11월 17일에는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전교생들이 교내에서 철야기도회를 갖고 정의구현과 교회 내의 혁신 및 자신들의 속죄를 위해 기도했다. 이튿날 신학생 164명 전원은 교회 내외의 불의를 고발하며 부정타파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며 시내로 진출하기도 했다.
1982년 대구대교구에 ‘선목신학대학’이 개교되자, 부산교구를 제외한 대구관구 소속 신학생들은 대구로 입학하게 됐다.
1984년 5월 4일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학교를 방문했다.
▲ 1973년 유신정권타파 신학교 첫 시가 진출 당시 모습.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교 방문 모습.
■ 1985년~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1985년 3월 1일 ‘광주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제9대 학장으로 방영구 신부가 취임했다. 1987년에는 교수신부, 신학생 모두 성명서를 발표하고 군부독재에 반대했다. 1991년 3월 부산가톨릭대학이 설립되면서 광주가톨릭대학의 지원자는 광주관구와 살레시오회, 예수고난회 소속 신학생들로 축소됐다. 1994년 3월 1일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학교 명칭이 ‘광주가톨릭대학교’로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 10월 나주시 남평읍에서 대학 신축 기공식을 갖고, 1998년 2월 새 학기를 나주시 남평 캠퍼스에서 맞이했다. 쌍촌동 캠퍼스는 1999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교 이후 2012년 3월까지 광주가톨릭대학교는 903명의 신부와 장인남, 김희중, 조환길 대주교 그리고 장봉훈, 안명옥, 권혁주, 이한택, 황철수, 손삼석, 옥현진 주교를 배출했다.
▲ 2010년 사제서품식 성인호칭기도 장면.
▲ 성무일도를 바치는 모습.
▲ 쌍촌동 캠퍼스 항공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