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급변하는 출판환경 안에서도 50년간 오로지 책으로만 승부하며 한길을 걷고 있는 분도출판사의 모습이다. 출판사(사장 선지훈 신부, www.bundobook.co.kr)는 그 반세기 역사를 기념하며 7일 오전 11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기념일에 앞서 이번 특집에서는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 ‘시대의 징표’로 평가받아온 출판사의 역사와 출간 방향 등을 되짚어본다.
분도출판사는 한국교회 안팎에서 여전히 ‘보기 드문’ 출판사로 꼽힌다.
우선 선진국 대형 출판사도 버거워하는 신학 전문 서적과 고전 번역 등의 무게 있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한 출판사의 역량으로는 시도조차 어려운 성경 출판과 주석서 발간을 위해 수십 년의 시간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기대만큼 반향도 없고, 심지어 각종 공격까지 받으면서도 교회 전반과 개개인의 내적 쇄신, 새로운 시각을 일깨우는 책을 다양하게 펴내고 있다. 이윤에 따라 책 출간 방향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고유의 소명을 뚝심 있게 이어온 분도출판사는 한국가톨릭교회뿐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의식에 교회출판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 역사
2012년은 분도출판사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이 기간은 정부에 회사를 등록한 때를 기준으로 헤아린 것으로, 실제 책만들기 역사는 ‘성 분도 언행록’을 처음 내놓았던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회는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책 출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인쇄매체들은 선교활동의 주요 도구 중 하나였다. 이어 1927년 덕원 수도원이 설립됐을 때는 곧바로 별도의 인쇄방을 설치했다. 이 인쇄방은 독립된 출판사의 전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60년, 수도회는 ‘예수의 생애’, ‘성 베네딕또 수도 규칙’을 처음으로 출간했으며 이로부터 2년 후인 1962년엔 정부에 정식으로 출판사 등록을 완료했다.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면서 출판사는 우선 수도생활과 전례, 영성, 성서신학 관련 도서 출간에 힘썼다. 신구약 성경 입문서를 처음 펴낸 것도 이 시기이다. 1970년대 들어와서는 ‘총서’시대의 문을 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새로운 유럽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은 당시 출판사가 선택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이즈음, 출판사는 분도소책과 우화시리즈 등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 메마른 영혼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영성서적들도 집중적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총서 발간을 활성화하고 사목총서와 종교학총서에도 눈을 돌렸다. 이어진 1990년대는 그야말로 성경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출판사는 여성과 환경, 영성, 묵상 서적 등에 대한 관심도를 날로 높여갔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신학텍스트총서와 중세철학총서, 교부들의 성경주해 등을 연이어 펴내며 출판사 본연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수도회에서도 출판을 고유 목적 사업, 즉 수익사업이라기보다는 사목적 영역으로 두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 과거 인쇄소 모습.
▲ 현재 인쇄소 모습.
■ 출판 방향
분도출판사는 크게 △신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 지적으로 성숙한 신앙생활을 돕는 책 △삶을 영적으로 풍요롭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책 △의식을 끊임없이 흔들어 깨우고 교회 안팎을 보다 밝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책 등을 펴냈다.
어느 한두가지가 출판사를 대표한다고 고르기엔 불가능할 만큼 많은 양서들을 내놓았지만, 출판사가 특별히 공을 들인 분야는 단연 ‘성경’이다.
출판사는 지난 1981년 ‘마르코 복음서’를 필두로 200주년 신약성경 주해를 간행하기 시작, 이후 2002년 ‘요한의 묵시록’을 끝으로 총 18권을 완간했다. 한 해 앞선 2001년에는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합본도 선보였다. 이 작업은 기획부터 그리스어 원전 번역과 윤독, 편찬까지 27년에 걸쳐 진행한 대장정이었으며, 역주 작업에 참여한 성경학자만도 11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 사이 1991년과 1998년에는 ‘200주년 신약성서’ 보급판과 개정보급판도 각각 출판했다.
아울러 전문 신학서적 출간 흐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만하다.
출판사는 창립 초기부터 성경을 이해하고 신앙을 심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원천 문헌은 물론 서구 신학계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텍스트들을 단행본 혹은 총서 형태로 옮겨내는 작업에 큰 공을 들여왔다. 한국적인 신학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신학 총서는 발간 당시, 그 책을 읽지 않고서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회자될 정도로 귀하게 평가받았다. 우리말과 글로 신학을 다져나가기 위해선 여전히 번역문화가 척박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부 문헌들과 중세철학 서적들도 펴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출간 방향의 줄기는 영성과 묵상 서적으로 대변되는 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기획물인 분도소책과 우화시리즈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참된 복음정신과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상한 나라의 숫자들’ 등의 책은 1970년대 한국 독서계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독자들의 의식을 깨우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게 하는 책들은 교회 뿐 아니라 한국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1970년에 펴낸 ‘정의에 목마른 소리’를 시작으로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 ‘평화 혁명’, ‘민중의 외침’, ‘정의를 실천하는 신학’ 등의 책들은 교회 안팎에 새로운 목소리를 전했을 뿐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일깨우는 역사적 가치까지 품고 있다.
이러한 출간 역량을 바탕으로 출판사는 앞으로도 신학 전문 서적과 고전 번역에 주력하며, 아울러 다원화된 시대에 새로운 콘텐츠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더욱 확산하는데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