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4~26일 태국 삼프란의 방콕대교구 사목연수센터에서는 FABC(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가 주최하고 신학위원회가 주관하는 제4차 ‘주교들을 위한 신학연수’가 열렸다. ‘아시아에서의 근본주의와 상대주의 : 젊은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열린 연수에는 FABC 신학위원회 상임 주교위원직을 맡고 있는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및 서서울지역 교구장대리)와 한국대표 전문신학위원직을 담당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가 주최측 준비위원으로 참가했다.
박준양 신부는 4월 25일 오후 4시 30분 ‘근본주의와 상대주의 : 젊은이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수에는 30여 명의 각국 아시아 주교들과 FABC 신학위원들, 기타 패널 토론자, 봉사자등 총 50여 명이 참석했다. 본지는 박준양 신부의 발표 논문을 번역 요약,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비그리스도교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있는 아시아에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책무는 바로 복음화의 사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임무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권고 <아시아교회> 47항에서 젊은이들을 현대 복음화의 효과적인 역군으로 양성하기 위한 사목적 배려와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 각국 교회에서 젊은 층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는 커다란 위험 신호라 할 수 있다. 왜 그들은 교회를 떠나가는가? 우리는 그 주요 원인으로서 근본주의와 상대주의의 만연 현상을 들 수 있고, 이에 대한 신학적 분석과 사목적 대응이 필요하다 하겠다.
먼저 근본주의에 대해 살펴본다면, 지금까지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종교적 근본주의, 즉 기독교 근본주의나 이슬람 근본주의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왔다. 하지만 이제 새로 두 가지 범주에서 근본주의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종교적 근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반종교적(과학적) 근본주의이다.
한편으로, 종교적 근본주의는 진정한 종교적 가치가 아닌, 비판 대상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적 성향을 보임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종교와 신앙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실상 무신론과 다를 바 없는 역효과를 자아낸다. 다른 한편으로, 과거와 달리 현대 세계의 과학적 무신론이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매우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성향을 가지고 종교와 신앙을 비판하는 흐름을 보게 된다. 전투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현대의 과학적 무신론을 가리켜 학자들은 ‘과학적 근본주의’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근본주의나 과학적 근본주의의 공통점은 실재에 대한 편협하고 배타적 해석, 그에 입각한 공격적 성향이고, 이들 모두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남겨 그들이 교회를 등지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과학적 근본주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화적 상대주의와 연결, 더 치명적 요소로 작용한다.
현대의 과학적 무신론의 대표 인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리처드 도킨스를 들 수 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바탕으로, 다윈의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유사성을 복제자가 필요한 점이라고 설명한다. 생물학적 진화에서의 복제자가 유전자(gene)라면, 문화적 유전자에서의 복제자는 바로 밈(meme)이다. ‘밈’이란 단어는 모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간에서 따와 도킨스가 만든 용어이다. 마치 패션 감각이 하나의 ‘밈’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모방되고 전해지듯이, ‘신’이라는 개념도 뇌 사이를 뛰어다니며 전염되는 ‘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후 여러 책들이 발표되었고, 2006년에는 가장 센세이셔널한 저서 <만들어진 신>이 출간됐다. 여기에서 도킨스는 과학이 전통적 신학 영역을 대체해야 한다며, 신앙은 거짓된 믿음에 근거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그는 종교를 제거하면 세상은 훨씬 안전한 장소가 되며, 그리스도교는 거짓된 종교 현상의 대표적 경우라고 주장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도킨스만큼 전투적이지는 않다 해도, 2010년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매우 공격적인 무신론을 전개한다. 그는 철학은 현대물리학의 발전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죽은 것이라고 말하며, 인생과 우주의 비밀에 관한 물음은 과학만이 대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생성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며, 과학은 우주의 신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뿐 아니라 “왜” 그러한 것인가까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이러한 무신론적 과학자들의 전투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주장은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근본주의적 충돌과 갈등, 전쟁에 역겨움을 느낀 젊은이들에게 ‘종교는 악한 것’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한마디로 종교적 근본주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며, 과학적 근본주의는 이러한 탈종교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과학적 무신론의 도전과 그로 인한 근본주의적 흐름들 간의 충돌로 인한 혼란 속에서 교회는 어떤 신학적, 사목적 대응을 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분석과 신학적 숙고를 통해, 과학적 근본주의의 맹점과 허상에 대해 잘 알게끔 젊은이들을 일깨워야 한다. 사실 과학적 근본주의자들이 표출하는 것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름없는 적개심과 미움 이상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종교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과 적대감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과학적 지식을 사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하고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과연 그들이 철저하게 중립적이고 순수한 과학적 탐구의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무신론적일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신학과 과학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 실존의 신비에 대한 진리 탐구적 열망의 동일한 샘에서 솟아나와 각자 다른 길에서 그 위대한 신비를 향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학적 근본주의에 심취하여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모습들에 실망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반론과 요구에 담겨 있는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지적인 욕구와 영적인 열망이 무엇인지를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근본주의에 대한 반론은 단순한 호교론적 맥락에서의 대응을 넘어서, 공동체적인 진리 추구의 열망이 거룩한 신앙의 유산과 교회의 현재적 삶 안에서 계속 역동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증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아시아는 전통적인 종교문화적인 유산과 서구적 산업화 및 정보화의 큰 물결들이 만나 서로 교차되고 있는 격동의 장소이다. 철저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전통적인 종교-문화적 가치,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흐름까지도 통합하는 균형 잡힌 신학적 전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우리 젊은이들이 종교 다원주의와 과학주의의 도전 속에서도 참된 그리스도 신앙의 역동적인 증인이 되게끔 인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 아시아교회가 당면한 급박한 과제이다.
■ 인터뷰 -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교회 안 청소년 문제 바라보는 이론 토대 마련”
“지난 1년간의 연구 노력을 통해 아시아 각 교회의 구체적인 사목적 비전 수립에 도움을 주게 된 점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또 아시아 교회의 백성들이 한데 모여 교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나누고 논의하는, 아시아 교회의 생생한 현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도 큰 기쁨을 느낍니다.”
FABC 제4차 주교들을 위한 신학연수에서 ‘근본주의와 상대주의 : 젊은이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박준양 신부.
박 신부는 발표에서 특히 현대의 과학적 근본주의라는 새로운 흐름 그리고 문화적 상대주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루면서 이 같은 제 상황들이 어떻게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결국 교회를 등지게끔 만드는지를 이론과 실제의 차원에서 설명, 각국 주교들을 비롯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신부의 논문 발표는 연수 후 진행된 FABC 신학위원회 정례회의에서 분석된 참가주교단 설문 평가에서도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공식 발표됐다.
이번 논문 발표는 지난해 FABC 신학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추천됐다.
박 신부는 “1년 동안 주제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연구와 더불어 다양한 인터넷 리서치, 그리고 청소년 사목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논문을 준비해 왔다”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다른 발표자 3명이 모두 아시아를 대표하는 저명 신학자들이었던 면에서 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젊은 신학생들과의 심도있는 대화를 병행하면서 2011년 2학기 대학원 과정에서 같은 주제의 세미나를 개설, 제자 신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각도에서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같은 다각적인 시도가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근본주의’, ‘상대주의’ 그리고 청소년사목 부분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서 창의적인 신학적 사목적 비전을 제시해야 했던 작업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들려준 박 신부는 “이번 연구가 한국을 비롯 아시아 각국 교회 안에서 청소년사목의 문제들을 근본주의와 상대주의의 흐름 안에서 바라보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게 됐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박 신부의 논문을 포함, 이번에 발표된 4개 논문은 모두 내용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FABC 중앙사무국을 통해 FABC 공식 문헌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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