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내가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근무하던 때, 당시 작전사령관 부부 조근해(안드레아)·조인화(젬마)씨에 관한 일화다.
당시 부대에는 성당이 따로 없어 개신교와 한 건물을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미사 후에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 후에 미사를 드리느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미사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깥에서 무척이나 소란스럽게 굴곤 했다. 그럴 때면 마음이 급해지거나 불안해지면서 분심으로 가득 차 얼른 미사를 끝내야 했다. 미사 후 신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할 때는 성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어느 날, 조 사령관이 미사 후에 어딘가를 가보자고 권유해 얼떨결에 부부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도착한 곳에는 개신교 예배당 건물로 썼던 작고 낡은 종탑 건물이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건물이라 빨간 벽돌은 부스러져 흉한 꼴을 드러냈고, 지붕도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다. 안은 완전히 도깨비 소굴이었다. 바닥은 쓰레기와 천장이 부서져 내린 잔해로 가득했고, 그 위에 비가 새 온통 썩어가고 있었다. 벽도 얼룩얼룩 곰팡이들의 군락지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부가 나에게 건물을 보여준 의미를 알고는, 즉시 사목회를 열어 이사를 결정했다. 그러자 부부는 건물 리모델링비로 쓸 큰 돈을 기꺼이 봉헌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태고, 몇 안 되는 신자들도 십시일반으로 동참했더니 그야말로 기적을 보게 됐다. 당시는 군종교구장이 안 계셨던 때라 전임 수원교구장이셨던 김남수 주교님께서 축복식을 거행해 주셨다.
성당이 생기고 난 이후 냉담신자들의 근무 사무실과 집을 더욱 꾸준히 방문했다. 성당이 생긴 지 3개월도 안 되어 미사시간마다 성당은 신자들로 꽉꽉 찼고, 서서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도 넘쳐났다. 그 진풍경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작전사령관 부부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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