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둡고 무겁던 봄날, 당신은
이 세상 빛과 소금을 꿈꾸며 첫발을 내디뎠다.
생명의 길과 사랑의 나라를 위하여
가시밭길을 헤치며 걸어왔다. 일흔여섯 해,
무너지는 환경과 가정을 지키고
모든 생명들을 따스하게 안아 올렸다.
구부려질 때도 있었지만 이내 바로 섰으며
「친환경 공동체」는 촛불 같은 화두였다.
더 어둡고 무거워졌던 1933년 이후
해가 열 여섯 번 바뀌고서야 거듭나
몇 차례 이름을 바꾸면서 날로 보폭이 커졌다.
푸른 이마로 대낮에도 불 환히 밝혀 들고
바람 불거나 비 내려도, 눈발이 흩날려도
목마르고 헐벗은 사람들에게는
맑은 옹달샘, 희망과 복음의 전령이었다.
일흔여섯 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이 되면서
캄캄한 가슴에는 어김없이 불을 지펴 주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흔들리는 꿈에는 날개를 달아 주었다.
무거운 수레바퀴 굴리고 또 굴리며
따스하고 둥글게 나눔과 배풂을 일깨웠다.
해가 뜨지 않을 때도 어둠 밀어내면서
먼 메아리와 도도한 물줄기를 만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흔들리지 않는 갈대로, 늘 푸른 소나무로,
부드럽지만 완강하게 새 날들을 열었다.
일흔여섯 해, 낮추면서도 당당하고
당당하면서도 한없이 낮은 자세로
우리를 안아 올리고 등 두드려 주었다.
눈과 귀는 멀리, 손길과 가슴은 가까이,
퍼덕이는 햇살과 푸른 공기를 안겨 주었다.
이 어둡고 무거운 시대, 이 황량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하여, 생명의 길과
사랑의 나라를 위하여, 이제 당신은
가파른 언덕을 다시 새롭게 오르고 있다.
▲ 이태수(아길로)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 속의 푸른 방」 「내 마음의 풍란」 등 출간
△대구시문화상,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현 매일신문 논설위원,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