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주님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꼬질꼬질하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세상이 두려워 벌벌 떠는 한심한 모습을 전합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주님의 부활소식이 전해졌고 베드로와 요한은 새벽 댓바람부터 달려가 직접 눈으로 빈 무덤을 확인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제자들의 품새가 말이 아니라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독서말씀은 “사람 팔자가 시간문제”가 아니라 성령을 받았는지, 성령을 받지 않았는지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콕 짚어주는 것이라 싶습니다. 솔직히 복음서가 전하는 제자들 모습들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흘려듣기 일쑤였고 이해를 못해도 건성건성 대답만 했던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한술 더 떠서 걸핏하면 다투고 불평했던 치졸하고 비열한 모습의 허접한 사내 집단임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 못난이들이 사도행전에서는 180도로 확 달라졌습니다. 성령의 힘입니다.
그나저나 제자들을 흉보다보니 마음이 찔립니다. 우리 모습도 딱하긴 매한가지라 싶은 까닭입니다. 복음 선포자의 막강한 사명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진리와 정의를 선포하기는커녕 ‘납죽’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뜨끔합니다. 세상의 악을 모른 척 눈감고 뒷걸음친 일도 아픕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분의 뜻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허약한 존재임을, 그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너절한 처지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오늘 두려워 떨며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뀐 사실에서 힘을 얻습니다. 주님만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기에 이제 더 이상은 세상이 무서워서 한숨 짓거나 걱정과 근심에 짓눌리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첫 성령 강림의 현장소식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찹니다. 하여 우리는 매우 특별한 날, 아주 특별한 준비를 갖추었을 때 성령 강림의 은혜가 주어지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야말로 그날 그 시간 그 장소가 결코 특별하지 않았던 제자들 일상의 한 부분이었음을 간과하는 것이라 싶습니다. 그날 그들은 으레 해 오던 대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뿐이니까요.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불쑥 임하셨던 것뿐이니까요. 그날 제자들을 찾아오신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임한 은혜와 동일한 은총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그날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세상을 변화시킬 신비의 힘이 주어졌다는 얘깁니다.
오늘 저는 그 신비의 힘이 제일 처음 작용된 부분이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새 삶은 말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일깨우신 것이라 싶은 까닭입니다. 변화된 사람은 이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원하시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라 싶기 때문입니다.
성당을 수십 년 다녔을지라도 사용하는 언어가 세상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여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라고 단언하고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에페 4,29) 말을 가려 사용할 것을 강하게 권면한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말하는 일이 얼마나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하는 죄인지를 마음 깊이 새깁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이미 내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라는 점을 명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영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성령인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새 사람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시기에 그분처럼 말하고 사랑하며 그분처럼 감사드립니다. 성령인이기에 온 세상에 그분의 언어를 전하며 그분의 향기를 풍깁니다. 오순절, 120명에게 성령을 부어 세상을 변화시키셨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연약함과 추함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밀물처럼 채워주고 계십니다.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뚜렷한 그분의 흔적을 남기는 복음의 주역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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