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동 그레고리오 신부님!
4월 18일 밤 전화소리에 깨어 받은 소식은 신부님의 선종 소식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로 알아보니 강남성모병원에서 오전 11시6분에 선종하시고, 그곳 영안실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려가고 싶어 시계를 보니 10시55분. 캄캄한 밤에 선뜻 나서기가 두려워지는 나이 먹은 신세가 한탄스럽기도 하며 죄송스러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영안실로 가시 신부님 영정사진이 저를 생시처럼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왈칵 울음이 터졌습니다. 1970년 처음 봉천동에 오실때 모습부터 그후 30여년의 신부님 모습이 차례차례 스쳐왔습니다.
신부님께서 병석에 계시다는 소식조차 못 들었는데,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다고 하니 더욱 가슴이 무거워 견딜 수 없습니다. 왜 자주 신부님께 안부드리지 않고, 뵈어야할 때 보비지 않고 있다가 이런 넋두리를 할까요? 용서해 주십시오.
신부님께서는 사제로서 어느 분 못지 않게 검소하게, 어질게, 학하게 이 세상의 질서를 순리대로 지키시며 생활하셨지요. 외람되이 여쭌다면 신부 신부님께서는 때로는 저희들의 벗과도 같이 허심탄회하게, 그러나 분수를 넘지 않게 즐겁게 대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생활하시던 모습 자체가 저희에게는 선하게 사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 이름을 다 기억하시고 혼인미사를 집전해 주신 일을 잊지 못합니다. 신부님의 축복이 헛되지 않게 그 아이들이 신앙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셨는지 여러 가지 것을 모두 정리하시고 참으로 평화스러운 가운데 선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용인 성직자 묘지에서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이별이 아니고 한 발 더 신부님과 가까워졌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생시에서 저희들과의 관계는 막을 내렸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저희를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영육의 고통이 없는 평화스러운 그곳에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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