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도 부임해간 성당에는 미니핀 종류의 작고 새까만 강아지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당시 이름조차 없던 강아지에게 나는 깜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깜새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이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그때부터 내가 특별한 사랑의 구애(?)를 시작했다. 깜새와 마주칠 때마다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면서 꽤 친한 사이가 됐다. 그러면서 나와 인사하는 사람에게는 다가가 꼬리도 흔들고, 자연스레 주일학교 아이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일미사 중 강론시간이었다. 한창 강론을 하던 중에 작고 검은 물체가 성당 입구 바닥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됐다. 바로 깜새였다. 내 목소리가 들리니 그 짧은 다리로 2층 계단을 올라 성당에 들어온 것이었다. 깜새는 미사가 끝날 때까지 성당 입구에 머물다가 내가 퇴장을 하자 성당을 빠져나갔다.
성모의 밤 때에는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본인이 복사인양 복사들과 함께 제대 앞까지 입당을 하는 것이었다. 미사와 행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미동도 않았고, 강론 땐 마치 잘 듣고 있다는 표시라도 하듯 귀까지 쫑긋거리며 제대 옆에 앉아 있었다. 모든 예식이 끝나고 복사들이 퇴장하자 깜새는 그제야 성당 밖으로 나섰다.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던 깜새가 어느덧 성당의 마스코트가 됐다.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사람씩 다가가 꼬리를 흔들며 맞이인사를 했다. 꼭 보좌신부라도 된 모양새였다. 이렇게 깜새는 나와 모든 신자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변화됐고, ‘사람과 함께 행복한 법’을 배우게 됐다.
동물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사제와 모든 신자들의 작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과 함께 행복한 법’을 쉽게 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우리 아이들이 깜새처럼 성당을 사랑하고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평생 동안 참식구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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