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를 통해 탄압에 가까운 정부의 종교 활동 통제에도 신앙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베트남 소수민족들을 다뤄본다. 특히 소수민족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조명해본다.
새벽 4시 50분. 떠오르는 해 주변으로 새벽의 푸른빛이 층층이 옅어진다. 아직은 잠에서 깨지 않은 도시, 꼰뚬교구 꼰뚬주교좌성당으로 향하는 자전거 페달 소리와 땅을 스치며 걸음을 재촉하는 발걸음 소리만이 새벽의 고요를 깨운다. 평일 새벽 5시에 시작하는 미사임에도 성당 안에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모인 이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성당 안에 있는 신자 대부분이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제대를 중심으로 앞쪽에는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법한 아이들이 아직 잠이 덜 깬 듯 연신 눈을 비비며 앉아있고, 그 뒤로 조금 더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차례대로 자리했다. 언뜻 보아도 개구쟁이 같아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누구 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진지하게 미사에 임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꾼(14·마리아) 양은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일찍 미사를 드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매일 미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기쁘다”며 “미사를 드리고 학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돼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꾼양의 꿈은 수녀가 되는 것이다.
▲ 평일 새벽 5시 미사임에도 꼰뚬주교좌성당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모였다.
■ 빈센트1보육원
이날 미사에 참례한 대부분의 아이는 빈센트1보육원(원장 이비우트 수녀) 소속이다. 꼰뚬교구 내에는 기적의 패 성모수녀회(총장 이응옛 수녀)에서 운영하는 총 6개의 빈센트보육원이 있는데 이 중 빈센트1보육원의 규모가 가장 크다. 보육원에는 부모를 여읜 아이,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맡겨진 아이 등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소수민족 아이들이다. 빈센트1·2보육원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정식 보육원이지만 나머지 4개 보육원은 아직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가난한 소수민족의 어려움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계한다. 빈센트1보육원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 현재 보육원은 국내·외 단체와 개인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지만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을 돌보기에는 빠듯한 살림이다. 보육원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수녀들은 채소를 재배하거나 닭을 키워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이러한 수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이 신앙을 이어나가고 보육원에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리투언(요셉·8)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좋다”며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빈센트1보육원 아이들이 제대 앞쪽에 자리 잡고 앉아 기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 빈센트4보육원
꼰뚬시에서 13km 정도 떨어진 똔꼬이 지역에 있는 빈센트4보육원(원장 리엥 수녀)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기자가 보육원을 방문했을 당시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테이블 당 4~5명의 아이들이 생선국 하나를 반찬삼아 밥을 먹고 있었다. 영양 공급이 활발히 이뤄져야 할 아이들의 식단으로는 무척 부실해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맨밥을 넘기는 것에 익숙한 듯 금세 밥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이날 점심식사를 마친 아이들에게 기쁨나눔재단(이사장 신원식 신부)이 마련한 조촐한 선물 전달식이 열렸다. 군것질을 해볼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재단 측에서 간식거리를 마련한 것. 선물을 받기 위해 질서 있게 줄을 선 아이들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보였다. 간식 몇 가지를 포장한 작은 선물이었지만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마냥 기분이 좋아 웃음꽃이 폈다.
세당(Xo Dang)족인 오앗(12)군은 5살 때 부모를 여읜 후 11살까지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오앗을 보육원에 인계했을 때 옷은 다 찢어져 너덜너덜했고 잘 먹지 못해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오앗은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냈고 그마저도 없으면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오앗은 이곳에 온 후 건강과 웃음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이제 오앗의 꿈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수녀회는 호적상의 문제를 해결해 오앗을 학교에 보내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오앗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된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신부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빈센트보육원은 갈 곳 없는 소수민족 아이들을 주로 돌보며 그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은 베트남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베트남어가 서툰 소수민족 아이들은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육원에서는 베트남어 교육을 비롯해 학교 수업 진도에 맞춘 보충 학습도 함께 진행해 소수민족 아이들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돕는다.
보육원은 ‘성소의 못자리’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소수민족 아이들은 신앙을 갖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교리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수녀회는 아이들에게 교리교육을 통해 신앙을 제대로 알게 하고 이들의 성소를 발견해 키워주고 있다.
수녀회는 앞으로 더 많은 보육원이나 기숙사 운영을 통해 소수민족 아이들을 돌보고자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와 감시로 인해 갈수록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으며 운영 비용을 마련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빈센트1보육원 원장 이비우트 수녀는 “주님의 은총과 후원자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이 생활했다”며 “한국 신자들의 작은 관심이 더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빈센트4보육원 아이들이 기쁨나눔재단에서 마련한 간식 선물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 인보성체수도회 베트남 분원장 최옥분 수녀가 빈센트4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오앗군의 손을 꼭 잡고 용기를 낼 것을 당부했다.
▲ 빈센트4보육원 아이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언뜻 봐도 부실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아무 불평 없이 맛있게 식사했다.
■ 베트남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도움 주실 분 : 우리은행 1006-801-342108 예금주(재)기쁨나눔
■ 문의 : 02-3276-77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