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얼마전 놀이터 근처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유치원 꼬마들을 보았다. 모래로 방을 꾸며놓고 어디선가 주워온 듯한 조각난 널빤지 위에 병뚜껑과 조그마한 그릇들이 앙증맞게 널려 있었다. 조그마한 그릇들 위에는 밥 대신 모래를 담아놓았고 반찬으로 마련해 놓은 이름 모를 풀과 꽃잎들, 그리고 조그마한 돌멩이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아마도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은 모양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두 번은 해본 적이 있는 소꿉장난, 그것은 바로 음식을 만들어 살림살이를 흉내내는 아빠놀이, 엄마놀이로 결국 가정놀이를 하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준비해 놓은 계집아이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여보, 식사하세요”라고 말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 지 달려가 꼭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빠 역할을 하는 사내아이는 “저녁은 무엇을 준비했어?”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오뎅도 볶아놓고 된장찌개도 끓였어요”라고 계집아이는 계면쩍은 듯 웃음을 보이며 대답한다.
어린아이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도 재미있고 귀여워서 멀찍이 지켜보던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생각도 잊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내아이는 벌떡 일어나 널빤지 위에 준비해 놓은 저녁밥상을 발로 걷어차며 “이걸 반찬이라고 만들었어?”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일순간 나는 너무 놀랐고 여자아이는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당신이 뭘 잘했다고 반찬투정을 하세요?”라는 계집아이의 말에 사내아이는 말대답을 한다고 쥐어박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으니 “이혼 해”라고 소리치는 계집아이의 당찬 목소리였다.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추억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던 어린 아이들의 소꿉장난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씁쓸하여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이 어린 꼬마들이 장난스럽게 준비한 놀이는 바로 소꿉질이었다. 가정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살림살이 흉내를 내는 소꿉장난인 것이다. 그런데 밥상이 둘러 엎어지고 손찌검을 하며 이혼하자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는 알 수 없는 죄의식을 느꼈다. 어린 꼬마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 아이들은 단순히 집에서 보고 배운 것을 재현했을 뿐인데….
아마도 아이들은 아빠가 저녁밥상을 발로 걷어차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엄마가 매맞는 것을 울면서 지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에서 이혼하자고 소리치는 것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너무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은 기성세대인 어른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본대로, 느낀대로 표현되어지는 다음 세대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추억 속에 소꿉장난과는 너무나 다른 꼬마들의 소꿉놀이에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요즘 결혼생활을 마치 어린시절 소꿉장난처럼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부부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다. 그냥 한 번 장난삼아 해 보는 것이 부부가 아닐진대 너무나 쉽게 만나고 너무 쿨(cool)하게 헤어지는 풍토에, 갈수록 내 눈에는 신혼부부들이 걱정스럽다. 3개월 전에 결혼하겠다고 예비 신부감을 데리고 혼인교육을 받으러 왔던 청년이 지난번 다른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시 혼인강좌를 듣겠다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소꿉질하는 장난처럼 보여서 영 기분이 상한다.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사계절은 사귀어 봐야 하지 않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면서 그 사람의 변화와 인간 됨됨이를관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혼인강좌를 끝내고 일일이 악수를 하고 수료증을 전해 주면서 제발 잘 살아주기를 진정으로 염원한다. 그리고 좀 더 진지하고 심사숙고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결정을 하기를 제발 간곡히 기도한다.
가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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