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각종 동영상 등 우리가 일상안에서 흔히 즐기는 대중문화 상품 안에는 성의식을 왜곡시키고,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코드가 수없이 깔려 있다. 생명문화연구가 이광호씨가 집필하는 이번 칼럼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죽음의 문화’에 노출되는 현실을 짚고, 올바른 시선을 키우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
필자는 국어문법론 박사다. 이것이 평생 전공과 안정적인 밥벌이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성교육 연구와 강의에 전념한 지 3년이 넘었다. 서른아홉 젊은 인문학자는 왜 전공을 바꿔서 주류 학자들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영역에 들어선 것일까?
지각 결석이 많은 여학생 몇몇이 있었고 F를 줘도 됐지만, 하나하나 불러서 면담을 했다. 아파서 출석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고 물으니, 얼마 전에 낙태를 했는데 하혈이 멈추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대화를 이어가며 마음이 풀린 한 여학생은 필자 연구실의 작은 성모상을 발견하고는 “선생님, 저도 성당 다녀요”라고도 말한다.
“엄마가 이 사실 아시니?”
“아니오.”
“엄마는 성당 다니시니?”
“네, 엄마는 레지오 마리애 단장이에요.”
필자는 여러 번 이런 식의 이른바 ‘멘탈붕괴 현상’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임신과 낙태는 일부 비행청소년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문제임을 알게 됐다.
무엇이 근본 원인일까를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스친 생각이 대중문화였다. ‘온갖 성적 자극으로 충만해 있는 문화상품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을 가르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고, 필자의 대중문화연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구가 깊어질수록 처음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침투력 강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왜곡된 성을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배우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청소년들의 성적 일탈이 심해진 것은, 성교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완벽한 형태의 왜곡된 성교육이 존재한 탓이었다. 앞으로 지성사회와 가톨릭교회는 무엇부터 힘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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