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을 의사처방 없이 일반약국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의약품 재분류 계획과 관련, 의료계와 종교계뿐 아니라 학계와 여성계를 중심으로도 재분류안 철회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강당에서 열린 ‘피임제 재분류(안)’에 관한 공청회에서는 사전피임약과 응급피임약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두 전문약으로 두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 간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현재 사전피임약은 물론 응급피임약까지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한약사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약사회는 응급피임약이 전문약으로 남아있으면 의료비로 인해 피임 부담이 가중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여성계도 피임실천율을 높이고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료계와 학계, 종교계 등은 의학적 근거 및 타국가 연구사례 등을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반박, 응급피임약의 폐해에 관해 강조하고 나섰다.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강인숙 위원은 “식약청은 응급피임약이 낙태약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약품설명서만 봐도 응급피임약의 주성분은 정상적 배란 억제뿐 아니라 수정란의 착상을 막는다고 명시돼 있다”며 “세계 각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여도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나 낙태 비율을 크게 감소시키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강 위원은 “두통이 있을 때 무조건 두통약을 먹기보다, 왜 두통이 생겼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낙태율이 높고, 청소년 성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 피임약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왜 그들이 성관계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회 김현철 회장도 “도대체 정부는 무슨 근거로 응급피임약에 따른 부작용 사례가 없고, 오남용 우려도 크지 않다고 말하는지 그 근거가 궁금하다”며 “특히 남성들의 사전피임 실천율이 높은 외국의 경우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청소년성건강위원회 및 정책위원회 최안나 위원은 “매일같이 낙태를 해달라거나 응급피임약을 처방해달라는 여성들을 만나는 의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응급피임약을 일반으로 돌린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낙태를 줄이도록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한데, 여성들에게는 더욱 위험하고 피임 실패율이 가장 높은 응급피임약의 접근성만 높이겠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일반약으로 전환하려는 품목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응급피임약이 모두 포함된다. 식약청은 앞으로 사회 각계 의견을 종합,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을 거쳐 다음달 의약품 재분류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심각한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응급피임약의 첫 공청회조차도 예정된 시간 안에 진행되지 않아, 공청회 참가자들이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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