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먼저 듣고 흉내를 내는 순서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이며, 이 네 가지 중에 먼저 귀가 뚫려야 눈에 보이게 되고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귀가 뚫리지 않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뭐가 들려야 손짓, 발짓이라도 하지요.
성당에 자꾸 오는 것도 하느님 말씀에 귀가 틔고, 결국 그 핵심을 붙잡아 기쁨을 얻으려고 오시는 것이지요. 성인(聖人)의 ‘성(聖)’이라는 글자도 우선 귀로 충분히 듣고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뚫려서 거룩하게 되는 순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먼저 하느님 말씀을 듣는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먼저 들어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을 먼저 말하려 하고 미리 설득시키려 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성을 내고 얼굴을 붉힙니다. 결국 두 사람의 참뜻은 전달되지 않고 앙금만 남게 되지요.
성당 일도 적지 않은 부분이 사람의 일이라 말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봉사라는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티격태격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성당 봉사단체는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봉사자의 희생으로 유지됩니다. 제가 속해 있는 레지오에도 그런 분들이 ‘미드필더’(허리)로 계셔서 항상 든든합니다.
미사 중에 침묵은 이러한 의미에서 제게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세상살이로 마모돼 가는 영성을 회복하는 피정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는 의욕을 성찰과 침묵의 시간에 할애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중요한 결정은 모두 성찰과 침묵 후에 나온다고 하지요.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며칠 전에 말씀하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봉사자들이 서로 말한다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