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목 표어로 삼았던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14년 동안 헌신했던 교구장직을 내려놓았다. 6월 15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이임 감사미사는 정 추기경이 14년 동안 재임하면서 받은 하느님 은총과 신자들 기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자리였으며 그 시간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제단과 교구민이 아쉬움으로 정 추기경을 배웅하는 시간이었다.
◎…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집전하는 마지막 미사가 봉헌된 서울 명동성당에는 정 추기경에 앞서 교구장직에서 물러난 이문희 대주교(전 대구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전 광주대교구장), 장익 주교(전 춘천교구장), 최덕기 주교(전 수원교구장) 등 은퇴 주교들과 장봉훈 주교(청주교구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등 전·현직 교구장들은 물론 백민관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김계춘 신부(부산교구 원로사목자), 이문주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함제도 신부(한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지부장), 박문수 신부(예수회) 등 교구를 뛰어넘어 많은 성직자들이 함께해 뜨거운 박수로 정 추기경을 환송했다.
▲ 정진석 추기경 이임 감사미사 봉헌을 위해 입당하고 있다.
▲ 미사를 주례하고 있는 정 추기경.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왼쪽), 염수정 대주교(신임 서울대교구장)가 함께 하고 있다.
◎… 이임미사가 봉헌된 명동대성당에는 제대 양쪽으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정 추기경님 감사합니다’ 글귀가 적힌 배너가 게시된 가운데 교구 사제단을 비롯 수도자 평신도 등 약 1500명의 교구민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성당을 가득 채웠다. 정 추기경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려는 듯 몇몇 신자들은 까치발로 미사 전례에 참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취재진들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성당내에는 교계 언론사를 포함 일반 언론 방송사 취재진들이 몰려 미사 전반의 내용을 카메라와 수첩에 담았다. 정 추기경의 일거수 일투족을 포착하려는 듯 카메라들의 플래시도 쉴새없이 터졌다. 한 신자는 “전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안타까움은 있으나 그만큼 한국교회 어른으로 자리한 정 추기경에 대한 사회내의 관심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움을 달래는 표정이었다.
◎… 이날 이임미사에는 오전에 개최된 사제성화의 날 행사와 맞물려 500여 명의 사제단이 참석, 단합된 교구 사제단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명동개발 작업 등과 맞물려 주차 여건이 여의치 않았던 점을 감안, 대다수 사제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지구 지역별로 카풀 형식의 승용차 함께타기를 솔선, 혼잡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구 한 사제는 “사전 협조 공문을 보냈어도 주차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사제단이 협조를 잘 해준 덕분에 큰 혼란을 막고 깔끔한 행사가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이임 감사미사는 사제성화의 날 행사에 이어 봉헌됐다. 사제성화의 날을 기념, 사제단이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위).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명동대성당 전경. 미사와 이임식에는 약 1500명의 교구민이 참석했다(아래).
▲ 이임 감사미사 후 참석주교단과 함께 정 추기경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한낮 최고 기온이 29도를 기록하는, 한여름 날씨를 보였던 무더위 속에서도 신자들은 정진석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미사 시간 2시간여 전 부터 명동성당 마당을 메웠다. 신당동에서 왔다는 한 신자는 “늘 인자하신 웃음으로 신자들 손을 잡아주고 웃음을 보여주었던 추기경님의 이임미사에 참례하고 싶어 아침부터 길을 서둘러 왔다”면서 “두 번째 한국교회 추기경으로서 한국 사회 안에, 특히 생명 부분에서 교회의 목소리를 들려 주셨던 역할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미사를 통해 교구를 위해 힘쓰셨던 마음을 함께하고 싶다”고 전했다.
◎… 정진석 추기경은 이날 이임미사 강론과 답사 부분에서 몇 차례 눈물을 보였다.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듯 말을 이어가는 정 추기경 목소리에 신자들도 함께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답사에서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이나 성당신축 기금을 마련했다는 신자를 만났을때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고,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목 현장을 지키는 사제들에게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소감을 전했다. “어떤 시험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느님이 우리를 믿고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성당 곳곳에서 ‘아멘’으로 응답하는 신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앞서 사제성화의 날 사제단과의 만남에서는 “어려웠던 청주교구장 시절, 당시 한국인 사제가 태부족했던 상황에서 사제를 보내달라고 ‘울부짖듯’ 기도를 했다”고 회고하면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이어서 정 추기경은 “그 후 30년간의 청주교구장직을 마쳤을 때 사제수가 106명을 기록, 기도한 대로 이뤄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들려줬다.
▲ 백남용 신부의 송별사를 듣고 있는 정 추기경.
▲ 상념에 잠겨있는 정 추기경. 이날 정 추기경은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여러번 눈시울을 붉혔다.
▲ 송별사를 하고 있는 서울평신도사도직협의회 최홍준 회장.
◎… 정 추기경은 답사에서 명동성당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 눈길을 끌었다. 정 추기경은 “명동성당은 태어나서 세례를 받은 곳이고 첫영성체와 함께 첫고해성사 견진성사를 받았던 장소이면서, 사제서품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면서 “이곳에서 칠성사 중 다섯가지 성사를 받았는데 두가지(혼인·병자성사)가 남았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서 정 추기경은 “그러한 하느님의 배려에 감정이 북받친다”고 밝히고 “어떻게 그렇게 이끌어주시고, 또 이 자리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 이날 행사 참석자들에게는 특별한 상본이 배부됐다. 정진석 추기경이 이임을 앞두고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에게 친필로 남긴 메시지가 담긴 것이었다. 친필 메시지에는 “제가 지난 14년간 서울대교구장 직을 수행하는데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도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본을 받은 이영지(세라피나 역삼동본당)씨는 “추기경님이 쓰신 한 자 한 자에 교구민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 해서 눈물이 났다”면서 “세심한 배려가 감사하고 앞으로도 교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 정진석 추기경이 이임미사을 앞두고 교구 신자들과 신자들에게 쓴 친필 메시지.
◎… 이임식을 마치고 정 추기경이 성당 중앙 통로를 통해 퇴장하자 신자들은 작별의 인사를 위해 몰려들었다. 저마다 추기경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고 추기경은 일일이 그 손들을 잡아주며 인사를 건넸다. ‘건강하세요’ ‘잊지 마세요’ ‘고생하셨어요’… 주교관으로 향하는 정 추기경의 뒤로는 못다한 신자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이러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추기경을 가로막는 취재기자들에게는 ‘추기경님 모습이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신자들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 교구 총회장단 지역대표들이 영적 예물을 증정하고 있다(위). 이임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는 가톨릭합창단(아래).
◎… 정 추기경의 이임 행사에는 김문수(모세) 경기도지사를 비롯,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 고흥길(바오로) 특임장관, 새누리당 정진석(사비오) 의원, 김용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관계 인사들도 자리에 함께해 정 추기경의 그간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김문수 도지사는 “그간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오신 정 추기경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위해 함께 걱정하고 기도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남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이임 행사에 함께한 여규태(요셉) 전 한국평협 회장은 “이제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으셨으니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여유로움을 누리시는 가운데 신자들과 교회에 더 넓은 시야를 전해주실 수 있는 신앙의 선배요 사목자로서의 몫을 다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임식에서 평신도를 대표해 정 추기경에게 영적선물을 전달한 손병선(아우구스티노·서울 서초동본당) 서서울지역 대표총회장은 “그간 해 오신 많은 저술활동을 밑거름으로 남은 생애 동안 북 콘서트 등 문화적 접근을 통해 신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더 친근감 있는 사제로 남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평협 권길중(바오로·서울 잠실본당) 부회장은 “신자들이 추기경님의 뒷모습을 보고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믿음 그대로 추기경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도록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시길” 기원했다.
◎… 한편 사제성화의 날 행사중 인사말 시간을 통해 사제단과 대화를 나눈 정 추기경은 “14년동안 교구장으로 지내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심정을 전하면서 “그동안 교구장직을 수행하는 삶에 십자가를 기꺼이 함께 나눠준 모든 사제들에게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항상 서품때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사제들에게는 “어려움이 닥치고 이해하지 못할 난관이 오더라도 아브라함처럼 미련하게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라”면서 “그렇게 될 때 주님께서는 늘 함께 계실 것”이라고 당부했다.
▲ 교구 사제단 행렬에 이어 성당으로 입당하고 있는 정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