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나를 통해 펼치고자 하는 것이 있으신 거죠. 전 그걸 묵묵히 해나가면 되는 거고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교단이었습니다.”
6월 20일 오후 2시, 인천 부평구에 있는 상정중학교에서 5년째 평생교육특화교실을 지도하고 있는 정진영(가타리나·78)씨를 만났다.
정씨는 지난 1995년 강원도 철원초등학교 월하분교장을 끝으로 40년 교직 생활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남편과 함께 국내·외 곳곳을 여행했다. 오랜 교직 생활로 인해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시작한 여행에서 정씨는 되레 제2의 인생에 대한 강한 끌림을 느꼈다.
“솔직히 저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여행도 다니며 편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자 했던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아마 그때 하느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 불러주셨던 거 같아요.”
1998년, 정씨는 인천 부개동본당에서 당시 김상용 주임신부의 권유로 노인대학을 설립했다. 그는 교직 생활의 경험을 살려 10년간 노인대학을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그는 노인대학을 운영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배움을 망설이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사실을 접하고 어르신 대상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정씨의 뜻은 2008년 결실을 봤다. 인천광역시 북부교육지원청을 통해 송정중학교와 인연이 닿아 현재의 평생교육특화교실을 열게 된 것. 정씨는 이후 매주 세 번씩 만학의 열정을 간직한 어르신들을 위해 교단에 서고 있다. 어느덧 5년의 세월이다.
정씨의 수업은 동년배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는 장점이 있다. 정씨는 단순히 교육하는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르신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그들의 친구가 돼줬다.
평생교육특화교실 반장 이순자(카밀라·71)씨는 6년 전 인천 부개동본당 노인대학에서 정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씨에게 선생님 자랑을 부탁했다.
“우리 선생님은 천사예요. 우리가 배운 것을 자꾸 까먹으니깐 답답할 만도 한데 한 번도 짜증내거나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모르는 것은 알 때까지 하나하나 반복해서 가르쳐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씨는 지난 5년간의 평생교육수업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못 배운 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어요. 선생님 만나서 공부한 뒤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수업을 손꼽아 기다린답니다. 무료한 삶을 살아온 제 인생이 바뀐 셈이지요.”
평생교육반 어르신들은 정씨의 세심한 지도로 높은 학업성취율을 보이고 있다. 한글을 읽고 쓰는 데 서툴렀던 어르신들은 이제 자식과 손녀들에게 손수 편지를 써 보내는 기쁨을 누린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어르신 6명은 검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하기도 했다.
산수(傘壽·80세)를 앞둔 정씨는 요즘 들어 부쩍 체력이 달린다고 한다. 하지만 열의를 갖고 공부에 임하는 제자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교단에만 서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이 불끈 솟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 하는 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 은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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