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벌써 18년전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사제생활 속에 잊지 못할 사건 중의 하나인 “업동이 사건”을 가톨릭신문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0여 년 전, 8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흘러 내리는 말복 더위가 한창인 여름밤, 밤10시가 넘은 시간에 함께 생활하던 김 신부가 갑자기 아이를 포대기에 감싸 앉은채 내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얼굴과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누군가 성당 대문 앞에 아이를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혹시 나를 닮은 것은 아닌가하고 쳐다 보았고 나는 반대로 그 아이가 김 신부를 닮은 아이가 아닌가하고 서로 얼굴을 바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아기의 포대기를 제껴보니 아이를 키울지 몰라서 그런지 아이의 몸에 벌겋게 땀띠가 가득했고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는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우니 한 달만 키워 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침 면담하던 베드로 부부가 임시로 맡아 키우겠다며 데리고 갔는데 아이가 밤새 울어서 어디에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이 돼 영동 S병원 응급실까지 다녀 왔다고 했다. 병원에서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그날부터 과천성당의 업동이로 키워지게 되었는데 그날부터 본당에서는 별의별 소문이 무성하였다. 업동이가 얼굴도 넙데데하고 빨갛게 생긴 것이 송 신부를 꼭 빼닮았다고 하면서 어쩌면 어디서 애를 하나 낳아서 성당앞에 갖다 놓았는 지도 모른다고….(ㅎㅎㅎ)
그렇게 하루 이틀, 한 주일, 두 주일 보름이 지나 한 달이 지나가는 동안 본당 신자들은 너나 할 것없이 아이의 분유, 장남감, 옷, 신발 등 선물공세가 이어졌고 아이로 인한 화제의 꽃이 한여름을 달구었다. 아마도 신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신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잘못에 대한 보상심리로 업동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10미사가 끝나고 성당 뒷좌석에서 한없이 눈물을 훔치던 너무나 예쁜 여인이 다가왔다.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를 찾으려고 지난 한 달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을 했다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고 서울대학을 다니던 남편이 데모를 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그만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결혼도 하지 못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대로 키울 줄도 모르고 생활이 어려워서 성당 앞에 아이를 놓고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26살의 젊은 여자의 인생이 너무나 기구하여 아이를 입양시설에 맡기고 새 출발 하라고 일렀지만 죽은 애기 아빠를 위해서도 꼭 잘 키워내야 한다고 눈물짓는 그 여인을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했다. 일주일 뒤 아이를 떠나 보내면서 신자들은 생명을 거부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속죄라도 하려는 듯 아이와 아이 엄마의 새 출발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나누어 전셋집까지 마련해 주고 아이 엄마의 직장까지 연결해 주었다. 업동이로 성당에 올 때는 포대기 한 장에 싸여왔던 아이가 떠날 때는 봉고차에 선물을 가득 싣고 마치 본당신부를 환송할 때처럼 신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떠나가게 되었다.
한여름 밤의 과천성당의 업동이 사건은 그 뒤에도 신자들 사이에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신부가 된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빈 손으로 들어왔던 업동이에게 온갖 사랑을 베풀어 주며 생명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깨달음을 체험한 신자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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