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아빠가 아주 먼 길을 떠난 그해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렸다. 따뜻한 봄, 베드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고 부활절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린이미사에 꼬박꼬박 나오는 베드로를 유심히 보셨던 신부님께서 “복사단에 들어올래?” 하고 넌지시 물어보셨다. “생각해보고요.”
그리고는 정말이지, 이틀 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벌써 예비 복사수업을 마쳤고 하나, 둘 평일미사에 복사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사단 규율이 엄격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문제는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선배 대접을 해주어야 하느냐, 마느냐하는 것이 베드로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친구들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는지 신부님께 꼭 여쭤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신부님께서는 ‘안 해도 된다’라는 답변을 주셨다. 이때부터 베드로의 고군분투는 시작됐다. 우선 새벽미사는 물론이고 평일미사를 의무적으로 참례하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엄마로서는 또 다른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미사를 일 년이 넘도록 동행했다. 어느 날은 미사 중에 종치는 연습을 백번이 넘도록 하느라 셔츠가 흠뻑 젖어오기도 하고, 예절연습을 하느라 학원도 빠지고 늦게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 오후 5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복사단 회합에 참여했다. 기도, 말씀나누기, 교리공부, 예절연습 등 모두 다 해냈다. 가끔 힘들어 보이면 그만두라고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어떻게 이토록 기적 같은 나날이 채워져 갔는지 신비할 따름이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첫 복사 배당을 받았다. 새벽미사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관리장님이 성당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을 했단다. 어느 토요일이었던가, 몹시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알아보았더니 그날 토요신심미사, 어린이미사, 특전미사 3대를 봉헌을 했던 적도 있었다. 복사를 대신 서주는 일도 많았다.
이런 노력과 열성(?)때문이었을까. 마침내 복사단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날은 꼴찌가 첫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단장직을 고사하고, 그 위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다른 친구에게 양보했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 때마다 늘 함께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나온 시련과 인내는 먼 훗날 빛과 소금이 돼 살아가기에 충분한 자양분이 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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