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배철기(프란치스코·24·군종교구 성루카본당)씨는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에 눈을 떴다. 배씨가 누워있던 이부자리는 물에 빠뜨렸다 막 건져낸 양 흥건하다. 숨이 넘어갈듯 한 아들의 신음소리에 깬 어머니 지영미(44)씨는 눈물부터 보인다. 자지러지는 아들의 고통이 수그러들 때까지 눈물 흘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매일 밤 배씨에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난치성 희귀 질환으로 알려진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1형. 전문가들에 따르면 CRPS로 인한 통증은 손발을 자르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10점으로 환산할 때 여성들의 출산에 따른 고통이 8점, 신체가 절단될 때의 고통이 9점이라니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아픔이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주를 가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통증이 잘 때만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찾아온다는데 있다.
배씨에게 이 질환이 찾아 온 건 지난 2010년 군 복무시절.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택한 길이 더 큰 짐을 지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훈련 중 발목 인대가 끊어져 군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다 의료진의 실수로 더 큰 병이 따라붙고 만 것이다. 입대할 당시 건강만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했던 배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군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마약류 진통제 주사뿐 치료가 불가능해 지난 4월 의병제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일상생활은 불가능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 때문에 12시간 이상을 꼬박 누워 지내며 고통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길 기도할 뿐….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을 오가며 각종 약물요법과 신경차단술, 박동성 고주파 열응고술 등 해볼 수 있는 치료는 무엇이든 시도해보지만 예전의 씩씩하고 착한 아들로 돌아가기란 힘든 일처럼 보인다.
지씨는 착하기만한 아들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게 모두 자신의 탓인 양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하루 12시간 넘게 한 달 내내 식당일을 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라곤 120만 원 남짓. 하지만 외적으로 드러나는 질환이 아니어서 장애 등급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병원비와 월세 등을 내고 나면 매달 빚만 쌓여가는 형편이다. 보다 못한 배씨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꿈같은 일이다. 1시간도 서 있기 힘든 배씨를 써줄 데가 있을 리 없다. “빨리 나아서 어머니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지씨는 예전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희망을 놓지 않는 아들이 대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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